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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입지분석

인천광역시 남동구 지역분석

by 다올혜윰 2021.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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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을 제외한 지역 자치구 중에선 대구광역시 달서구,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이어 폭발적인 인구 증가세를 기록하며 인구가 50만명을 넘어갔다. 인천광역시청이 소재해 있으며, 시청 이전 후 급격히 발달하여 인천광역시의 새로운 도심이 되었다. 그래서 심심찮게 중구와 동구를 병합하고, 남동구를 두 개의 구로 분리시키자는 주장이 나돌기도 했다. 다만 남동구도 인구가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라 인천광역시 내의 자치구 인구 1위 타이틀은 2018년 12월 기점으로 인천 서구에 밀렸다. (실제로 남동구는 미개발구역이 얼마 없는데 비해 인천 서구는 미개발구역이 많은데다가 이제 곧 검단신도시가 개발하기 시작하여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임)

 

남동이라는 지명 자체가 구한말에 이 지역에 있었던 남촌면과 조동면을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시절 각각 한글자씩 따서 지은 명칭인데, 공교롭게도 진짜 인천광역시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구 명칭 변경 논의가 나오지 않는 것도 방위를 설명하는 의미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보고 있다.

 

구월동 같은 업무지구와 간석동, 논현동 같은 고층아파트단지, 수도권 최대 산업단지인 남동인더스파크, 그리고 남촌동으로 기시되는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인 것이 특징으로 만수동으로 가게 되면 주거단지와 농촌이 공존한다. 거기에 장수동쪽에는 인천대공원까지 있어서 관광 목적으로 한 몫을 하는 곳이다. 거기에 밑으로 내려가면 논현동에는 소래포구가 있어서 어업과 관광업이 더욱 발달할 수 있는 곳으로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테마가 집약된 자치구일 것이다.

 

CGV인천, 뉴코아아울렛인천점, 교보문고인천점 등 주요 프랜차이즈 유통업체가 이 지역의 지점명을 인천으로 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공식적인 인천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인천광역시의 관문인 인천종합터미널과 롯데백화점인천터미널점은 길 건너 미추홀구 관교동에 위치해있따.

 

 

2. 역사

남동구는 본래 인천부 주안면 일부와 남촌면, 조동면의 지역으로, 1914년 부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에 다시 인천부에 편입되었다. 1968년에 인천시에 4개구가 설치되면서 남구 관할의 남동출장소로 개편되었다. 그 후 1988년 남구에서 분리하여 신설되었다. 신설 당시 13개 행정동에서 현재는 19개 행정동으로 늘어났다.

 

 

3. 특징

인천의 제1도심이다. 인천의 최대 도심은 구월동이다. 

 

구도심 인현동으로부터 완전히 도심의 자리를 빼앗아 온 명실상부 인천의 제1도심이다. 인천 구월동은 완전히 도심을 빼앗아버렸는데, 어느 지역이나 구도심은 신도심이 생기면 거의 자동적으로 몰락하는 편이지만 기존에 상당한 규모의 도시로 자리잡고 있던 구도심을 완전히 신시가지가 이정도로 확실하게 잡아먹은 케이스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인천 구월동이 인천시의 도심을 잡아먹어버리는 데에는 신도시의 형태가 드러난 1995년 이후 고작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초단기간에 도시 내에서 천도가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남동구는 인천의 중심업무지구이자 (인천시청 및 인천지방경찰청), 인천의 양대 상권 중 하나이자 (구월동 로데오) 인천 제조업의 중심지이자(남동인더스파크), 전국구 종합병원도 위치해있으며(가천대 길병원) 인천 근교 관광의 중심(소래포구 및 인천대공원)이기도 하다. 상당히 복합적인 역할을 가지고 계속 성장하는 지역이다.

 

덕분에 치안 수요도 많아서 인천광역시 내에서 부평구처럼 한 자치구에 두 개의 경찰서가 위치한다. 남동구에는 남동경찰서와 논현경찰서가 있는데, 남동경찰서는 논현경찰서 생기기 이전부터 있으며 농산물센터 바로 앞에 보인다. 논현경찰서는 논현5단지 옆에 있으며 2017년9월22일에 개서하였따.

 

 

 3-1. 남동인더스파크 ( 구 남동공단)

수도권에서 매우 큰 산업단지 중 하나인 남동인더스파크는 인천에서는 할 거 없으면 남동공단이나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원래 남동인더스파크가 있는 자리는 갯벌이었다. 연수지구는 주거지 개발을 위해서, 남동인더스파크는 공업지대를 위해서 매립을 하였다. 하지만 매립지 이외에 공업지대를 늘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옛날의 인천의 해안선이 궁금하면 남동인더스파크와 한화지구를 바다로 생각하면 된다. 지금의 상공회의소와 공구상가 쪽에 대원례도와 소원례도라는 섬이 있었는데 매립사업과 공단조성사업으로 인해 없어졌고 지금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남동인더스파크는 크게 1단지와 2단지로 구분되는데, 구분선은 바로 남동인더스파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수인선과 남동공단 공구상가이다. 남촌도림동과 논현1지구 쪽에 붙어있는 1단지는 대부분 전자, 기계, 조립을 중심으로 하며, 논현2지구와 동춘동쪽에 있는 2단지는 화학, 목재, 금형, 철강 등을 중심으로 한다. 공해도로 따지면 1단지에 비해 2단지가 심한편이다.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이었던 한화그룹 폭약공장이 고진동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곳이 충북 보은군으로 이전하여 현재는 한화건설이 재개발한 택지지구인 한화지구로 조성되어 있따.

 

고급 기술인력을 필요로 하는 공장이 많아 시화반월공단만큼은 아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일으키는 범죄율은 반월, 시화, 안산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그곳에 15년 넘게 살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은 거의 듣지 않을 정도. 그들은 거의 공장에 딸려있는 기숙사에 살거나 아니면 다세대 주택이 많은 연수 4단지 쪽이나 논현 1지구 쪽에 모여 산다. 논곡중학교 근처에는 수많은 연립주택이 조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곳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료품 가게와 외국인이 직접하는 식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주공5단지 옆에 다문화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누리학교가 존재한다. 특히 2010년 이후로는 러시아계 노동자들이 늘어났는데, 이주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상당히 각광받는 동네로 알려져있다.

 

남동인더스파크는 조성된지 20년이 넘어 노후화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또한 논현지구의 발전과 바로 옆 송도국제도시의 산업단지가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발전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남동인더스파크는 다른 디지털 산업을 위주로 하는 곳으로 탈바꿈하려고 하고 있으며, 남동공단에서 남동인더스파크로 명칭을 바꾼 것 또한 이러한 요인이 크다. 조만간 크게 달라진 남동인더스파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듯 하다. (남동인더스파크 1단지에 인천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3-2. 소래포구

소래포구는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찾는 재래 포구로 어항이 있다. 다만 이쪽은 선원들이 약간 안 좋은 쪽으로 빠지는지라 범죄율이 높다. 선원들이 대부분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상황이다. 소래포구에는 소래습지생태공원이 들어와 갯벌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시흥시의 월곶동과 다리하나 건너라서 같은 생활권으로 봐도 무방하다. 

 

인천시에서는 소래포구를 관광포구로 만들고 송도국제도시에 인천신항을 만들면 거기에 소래포구에 등록되어 있는 어선들을 옮길 생각이라고 한다. 항구를 없애겠다는 뜻이다. 이미 소래에 있는 배들의 태반은 월곶에다가 정박하고 있는데, 월곶은 뜬다리부두 하나만 있는 곳이라 많은 어선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수도권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지만 사람들이 한번 오면 다시는 안 오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시장 상인들이 굉장히 불친절하게 대하고 바가지를 씌운다는 것이다. 소래포구에 갈 계획이 있다면 불친절과 인파와의 싸움을 각오하고 가야한다.

 

 

4. 교통

GTX-B 노선이 '인천시청역'에 정차할 예정이다.

 

5. 교육

구에서 북쪽에 위치하는 동(구월, 만수, 간석)에 비하여 남쪽에 위치하는 동 (장수-서창, 남촌, 도림, 논현, 고잔)의 학교 수와 교육환경은 안습이었으나 논현지구 입주 이주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논현동의 경우 연수구 못지않게 교육열이 대단하지만 그에 비해 다른 동의 경우 교육열이 높지는 않다. 인천 내에서 성적은 중위권이며, 구 내에 전문계 고등학교가 한국문화콘텐츠고등학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여고임.) 구내에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존재하지 않음. 본래 논현고가 유일한 남녀공학이었으나 2012년부로 여고로 전환했다.

 

남동구 뿐 아니라 남동구가 속해있는 1학군(연수구, 미추홀구, 중구, 동구)에는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없다. 2,3 학군에만 남녀공학이 편중되어 있는 현실이다. 다른 특징으로는 학교가 위치한 지역과 교명이 일치하지 않는 학교들이 있다. 그 이유는 이 학교들이 구도심에서 이전해왔기 때문이다. 

 

 

6. 상권

 6-1. 관교동 일부

본래 관할은 미추홀구 관교동이지만 구월동 상권과 겹쳐져 구월동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엔 핵심시설이 2개나 있는데 하나는 평일이건 주말이건 사람이 미어터지는 롯데백화점인천터미널점과 롯데타운의 앞길의 교통체증을 책임지는 인천종합터미널이있다. 특히 롯데백화점과 인천종합버스터미널은 연결되어 있어서 이 부근의 교통체증이 어마어마하다. 주말엔 기차놀이가 기본이며 택시와 사람까지 합세하여 북새통을 이루게 된다. 이곳에 있는 지하철역으로는 인천내에서 이용객 수 상위권에 속하는 인천터미널역이 있다. 특히 롯데 앞에 있는 x자 횡단보도는 바로 앞에 있는 뉴코아 아울렛 구월점과 함께 사람이 몰려들어서 매순간 엄청난 사람이 건넌다.

 

 6-2. 구월동 로데오거리

인천에서 유동인구 집중도가 엄청난 곳 중 하나다. 구월동에서 만나자고하면 십중팔구 이곳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코아아울렛 구월점 뒷편부터 시작하여 이토타워(교보문고 인천점) 뒤편 길까지를 가리킨다. 그야말로 평일이건 주말이건 붐비는 곳이다. 이 곳에 입점한 브랜드를 들자면 나이키, 아디다스, 두레쥬르, 파리바게트, 베스킨, 스타벅스, 파스쿠찌,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브랜드들은 모두 입점해있고 그 외에도 카페, pc방, 노래방, 핸드폰가게, 음식점은 셀수 없을만큼 넘친다. 특히 이토타워에는 인천 최초 최대 규모의 교보문고가 입점해있다.

 

또한 이 지역의 특징으로는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과 구 롯데백화점 인천점 건물의 롯데시네마, 홈플러스의 cgv까지 이 좁은 곳에 영화관이 3개나 들어와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지역에 있는 예술회관역은 인천 도시철도에서 출구가 가장 많으며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역이다. 또한 뉴코아 아울렛 앞 버스저류장은 정차하는 버스가 엄청나게 많다.

 

 

 6-3. 인천광역시경찰청과 See&See

특히 인천광역시경찰청 덕분에 근처 중학교인 구월여자중학교는 졸업식 때 인천광역시경찰청에서 파견을 온다. 이 부근 역시 예술회관역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 인천사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출구가 많고 출구의 범위도 크다. See&See에는 CGV인천점과 홈플러스, 맥도날드, 베스킨라빈스, KFC, 음식점, 전자상가 등이 있다. 또한 경찰청과 See&See 사이 사거리에는 여러가지 상가들과 아웃백, VIPS가 같이 입점해있다. 이곳은 유동인구 자체는 단순 연결고리라서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구월동의 범위가 워낙 좁은지라 여기서 옆으로 가도 사람 앞으로가도 사람 뒤로가도 사람 제자리에 있어도 사람이라는 ... 사람을 엄청나게 많이 보게 된다.

 

 6-4. 부평과의 비교

1) 부평역은 역 근방 번화가로 발달되어 있는 반면에 구월동은 철저하게 계획된 대형건물 중심의 번화가이다. 부평에 놀러갈 땐 부평역을 지칭하지만 구월동 번화가를 예술회관역 혹은 인천터미널역으로 지칭하지 않는다.

2) 부평은 지하상가가 존재하지만 구월동은 지하상가가 없다. 애초에 구월동은 지상계획으로 만들어진 번화가이기 때문이다. (지하상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예술회관역에서 6번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나 시청방면 사거리쪽 출구에 약간 있긴하지만 지하상가라고 하기에는 상가가 거의 없다.)

3) 두 번화가의 규모는 당연히 부평쪽이 더 크다. 차이점은 부평은 넓지만 어수선하고 구월동은 비교적 좁지만 블록단위로 개발되어 정돈이 아주 잘되어 있다. 애초에 부평은 부평권 주민들이 더 많이 가고 구월동은 원인천 주민들이 더 많이 가기 때문에 지역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7. 하위행정구역

인천광역시 남동구 행정구역도

 

 6-1. 구월동

남동구의 빅3 중 하나이며 인천의 최대 상권이기도 하다. 

 

본래는 큰구월, 작은구월, 전자울, 큰성말과 같은 자연부락이었다. 현재 만월산으로 불리는 산은 원래 주안산 또는 구월산으로 불리었는데, 구월동은 바로 구월산에서 비롯되었다. 1946년 구월동으로 개칭하였으며, 1982년 구월1동에서 구월2동이 분동했다. 이후 1991년 구월1동에서 구월3동이 분동하였으며, 1993년 구월1동에서 구월4동이 분동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인천광역시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하나로, 구월1동과 구월3동, 미추홀구 관교동 일부지역을 묶어서 구월동이라고 한다. 인천에서 부평역 인근과 함께 유동인구 집중도가 높은 두 지역 중 하나다. 특히 인천에 브랜드가 입점하면 10개 중 8~9개는 모두 구월동으로 입점할만큼 입지가 굉장히 강한 동네다. 보통 범위는 관교동 관내에 있는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과 인천종합터미널부터 시작하여 CGV 인천점이 있는 See&See 건물까지 구월동의 주요 도심이라고 칭한다. 한 때 인천의 대표상권이었던 동인천, 터미널이 있었던 용현동 구 터미널의 단점을 보완하며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구월1동 : 구월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행정동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월동의 대부분이 이곳이라고 생각하면된다. 실제로 면적도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인천시청, 중앙도서관, 가천대길병원, CGV인천, 홈플러스구월점, 한국시티은행인천영업부 등 많은 관공서와 공공기관, 기업들이 있었으나 2015년 구월1~3동 간 경계조정으로 대부분 구월3동으로 넘어가서 고월1동은 아시아드선수촌과 남동경찰서, 길병원 등을 관할한다. 본래 외곽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여있었으나 2014 인천아시아게임을 위한 선수촌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그린벨트가 해제됐다. 참고로 구의 대부분이 구월3동으로 넘어갔으나 선수촌아파트의 영향으로 인구와 인구밀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며 선수촌 지역이 발전 중이라서 구월동의 메인임은 변함없다.

 

 -구월2동 : 1970년대 말에 지어졌던 수도권 최대 크기의 단일 저층아파트단지 구월주공아파트가 있던 동이다. 199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구월주공 주변으로 벚꽃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그 주변에서 인천 유일의 벚꽃축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1996년에 인천대공원이 개장하면서 이 지위를 잃게 되었지만 말이다. 2003년 철거 후 재건축되기 전까지도 봄에 벚꽃이 피면 아파트 주민들이 나와서 가족끼리 소풍오듯 돗자리를 펴고 고기를 구워먹곤 했다. 철거 이후 롯데건설과 현대건설이 재개발을해서 구월주공 1,3단지에는 현대힐스테이트가 2단지에는 롯데캐슬이 들어섰다. 가장 높은 아파트가 37층이고 전과 다르게 아파트가 성냥갑 수준으로 밀집해있다. 구월주공 시절엔 들판이 상당히 넓고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지 않았었다. 단지가 완공된 2007년 당시에는 전국 최대 규모급의 아파트단지였다.

 

 -구월3동 : 구월동의 경제와 문화 중심지. 본래 주안과 가까운 구월동 지역을 포함하는 배드타운적인 성격이 강한 동네였지만, 2015년 동 행정구역 조정으로 인천시청, 시의회, 교육청, CGV인천, 구월동로데오거리, 시티은행, 농수산물도매시장, 가천대길병원 응급실과 암센터, 서해구너역센터, 넥슨코리아 인천지사 등 대부분의 시설을 관할하게 되었다. 과거 1998년 퇴출 전까지 존재하던 경기은행의 본사가 구월3동에 있었다. 북쪽으로는 간석동, 서쪽으로는 주안4동과 주안8동이 인접해 있으며 발전 초기에는 주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동의 분위기는 중앙공원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이 다른편으로, 서쪽은 주안의영향을 받아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구월3동 북서쪽 지역은 최근들어서 신축빌라와 각종 건물이 들어서면서 발전을 꽤하고 있다. 동쪽은 원래 예술회관 정도가 전부였으나 로데오거리 일대가 넘어오면서 인천에서 부평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구월동 로데오거리가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로데오거리 뒷편으로는 서쪽 구월3동과 비슷한 분위기의 주거지가 다시 이뤄지는 구조를 지니고 있따.

 

 -구월4동 : 구월4동은 만수동과 밀접하여 만수동과 생활권을 공유한다. 모래내시장이 있으며, 구월3동과 마찬가지로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그리고 저층 아파트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추홀도서관이 이동에 있으며 동의 50%는 산과 자연부락이 차지하고 있다.

 

 

 6-2. 간석동

남동구 빅3 중 하나. 부평, 계양, 구월동과 함께 선호도가 높다. 만수동과 함께 구월동의 배후 주거지역 역할을 하고 있다. 간석4동은 구월동 생활권이 아닌 미추홀구 생활권에 근접해있다. 

 

구월동이 주거지구와 도심의 기능을 같이 수항핸다면, 만수동과 간석동은 주거지구의 역할을 주로 수행하고 있다. 같은 주거지구인 만수동에 비해 철도 환경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철도 교통은 아주 좋은 편이다. 또한 구도심이라 할 수 있는 주안과 현재의 도심인 구월동의 중간지대에 위치하여 두 번화가를 잇는 지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버스편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간석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던 양촌마을과 돌말마을이 합쳐져서 생긴 지명이 간석동이다. 많은 사람들은 간석동까지가 갯벌이었기 때문에 간석지에서 지명을 따왔다고하는데, 간석동에 있는 자잘한 언덕들을보면 그런 소리가 헛소리라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1970년대에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간석동은 인천 남부의 핵심적인 중심지로서 떠올랐다. 구월동은 당시 전형적인 베드타운으로 조성이 되었다면, 간석동에는 시장과 넓은 도로를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했다. 그렇게하여 1981년에 인천시청이 구월동에 1988년에 남동구청이 만수동에 생겼지만 남동구의 중심은 간석동이었다. 하지만 1988년 희망백화점의 부도, 구월동 신상권의 대두를 통하여 간석동은 남동구의 중심지 지위르 빼앗기고 말았다.

 

 

 -간석1동 : 인천시청 주변 지역이라 생각하면 알기 쉽다. 80년대 말까지는 지금의 간석4동이 여기에 속했다. 현대홈타운아파트와 금호아파트, 한진아파트 등 많은 고층아파트와 저층다세대주택이 섞여있는 곳이다. 인천도시철도1호선과 2호선 인천시청역이 이 동네에 잇으며, KT인천지사와 남인천우체국이 이 동네에 있다. 상인천초등학교와 상인천여중도 간석1동에 위치하며 동 주변에 재건축 예정 지역이 4곳이나 존재한다. (성락아파트, 백운주택, 상인천초 주변, 우신주택)

 

 -간석2동 : 진정한 베드타운으로, 구월동에 구월주공아파트가 있었다면 간석동에는 간석주공아파트와 간석맨션이 있었다. 구월주공아파트와 비슷한 시기 (1970년대 후반)에 건축됐으며, 2000년대 몰아진 재건축 바람으로 간석맨션은 재건축에 들어가 간석금호어울림이 되었고, 간석주공도 구월주공아파트가 재건축을 시작한지 1년 후 재건축을 시작했다. 2008년 완료된 간석래미안자이는 2432세대로 구월주공보다 50%정도 적은 입주민들이 들어섰고, 성냥갑 수준이라는 평을 받언 구월 힐스테이트-롯데캐슬보다는 여러모로 나은 점 때문에 훨씬 비싼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간석동과 남동구의 중심이었던 희망백화점 (현 올리브아울렛)이 간석2동에 위치한다. 1980년대 초반에 미도파라는 쇼핑센터가 생겼고 그것이 1980년대 후반에 희망백화점으로 발전하였다. 동시기에 부평에 현대백화점이 들어섰지만 이름있는 백화점을 상대로도 이 백화점은 완승을 거두었고 인천 최대 매출의 백화점이 되었다. 당시 동인천에 인천백화점, 부평에 동아씨티백화점이라는 향토백화점도 있었지만 희망백화점을 절대 따라올 수 없었다.

 

남동구는 물론이고 당시에 신도시로 발전했던 연수구, 이렇다할 쇼핑센터가 없던 남구에서도 희망백화점으로 몰려들었고 부평, 동인천에서도 희망백화점으로 쇼핑을 올 만큼 인천 중심 백화점으로써 역학을 하였다. 1995년 구월동 신상권에 하이웨이백화점 (현 뉴코아아울렛)이 생겼지만 희망백화점의 지위를 넘보지 못했다. 하지만 1997년 관교동에 인천터미널의 개통과 함께 생겨난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현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이 생기면서 희망백화점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또한 동시네 IMF크리로 1998년 부도가 나고 말았다.

 

2004년에 장기적인 내부공사를 통해서 올리브아울렛으로 재탄생하게 된 희망백화점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며 동시에 인천의 향토백화점의 계보 또한 마침표를 찍었다. 올리브아울렛 앞은 과거 중심지었다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엄청나게 많은 버스가 정차하고 교통량도 장난아니다. 하지만 길이 왕복 6차선에 불과한 상당한 교통량 치고는 다소 좁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는 항상 전쟁을 치르는 동네이기도 하다.

 

 

 -간석 3동 : 만수3동과 구월2동과 인접해있다. 간석사거리가 있으며 만월산이 이 동에 있다. 만월산 터널을 가는 길목도 이 동을 경유하는데, 때문에 며적에 비해 인구는 상당히 적은 편이다. 상인천중학교 건너편의 달동네가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선정돼 재개발하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그러나 개발이 완료되고 입주가 시작되자 눈에 띄는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다른 간석동에 비해 저층 다세대 주택이 많은 편이며, 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지역이다. 간석시장이 간석3동에 있으며, 야구부로 유명한 상인천중, 간석여중, 신명여고 또한 이 동네에 있다. 만월산과 부평공동묘지 사이에는 공업사들과 공장들이 있다.

 

 -간석4동 : 본래 간석 1동이었다가 1990년에 분리되었다. 간석오거리역과 간석역이 이 동에 있다. 주안과 부평구 십정동의 중간에 위치해서 이 두 지역과 생활권을 공유한다. 홈플러스 간석점이 잇으며, 이 주변은 인적이 많이 드물어 밤이 되면 상당히 어두컴컴한 모습을 보인다. 

 

 

 6-3. 만수동

남동구의 빅3 중 하나다. 옛날 서울에서 수산포구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중국의 무역선이 수산포구에 들어와 물건을 서울로 반입하는 길목이었던 주막거리인 김촌, 박촌, 하초나을이 있었던 곳으로 만수동의 옛이름은 새말, 구룡골, 신밀말, 담뱅이말, 장승배기, 비릭개, 돌골, 쇠판 등이라고 하였으며 백세까지 장수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만수동이라고 하였다. 

 

1945년8월15일 만수동 -> 1979년5월1일 만수1동과 만수2동 분리 -> 1983년10월1일 만수2동과 만수3동 분리 -> 1988년5월1일 남구에서 남동구가 분구하면서 만수1동과 만수5동 분리 -> 1989년 만수주공아파트의 입주로 인해 만수2동과 만수4동이 분리 -> 1993년 만수1동과 만수6동이 분리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됨.

 

 -만수1동 : 본래 만수동 전체를 관할하던 곳이었지만 분동으로 인해 크기가 상당히 작아졌다. 작은 동 크기에도 불구하고 만수주공 7,8단지와 삼환아파트, 그리고 빌라 등으로 인해 인구밀도는 만수5동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만수동에서 흔치않는 남녀공학 중학교 중 하나인 만성중학교가 이 동에 있다. 

 

 -만수2동 : 1979년 만수1동에서 분동되었다. 동의 남북으로는 만수로가 지나가며, 동서로 만수서로가 관통한다. 백범로 일부구간도 만수2동을 지나가며, 만수로 양옆으로 주거지구와 상권이 형성되어있다. 2014년까지 인구가 제일 많은 동이었찌만 2016년7월 기준으로 만수6동에 1위 자리르 내주었다. 만수시장과 향촌지구가 이 동에 있다. 달동네였던 향촌지구 재개발이 완료되면서 향촌지구가 중심지가 되었다. 향촌지구 앞으로 옮겨지고 그 주변에 상권이 들어서는 상황으로 이전에 쓰던 동사무소 건물에는 남동구 도시관리공단이 들어섰다. 

 

동 내에 축구부로 유명한 만수북초, 중고등학교로는 공립인 동인천고와 인천에서 보기드문 사립학교인 숭덕여중과 숭덕여고가 있다. 또한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인 미추홀학교가 만수2동에 있다. 접근성도 좋은 편이지만 동네에서의 존재감은 0에 가까운 편이다. 

 

만수2,4동의 최대 상권인 만수시장이 이 동 관할에 있다. 만수시장 옆에는 현재 거의 폐가 수준인 만수종합쇼핑몰이 있다. 한때 만수종합쇼핑몰은 서점도 있었고 병원도 있는 등 말 그대로 종합 쇼핑몰이었으나 오래돼서 손님이 갈수록 줄어들어 철거하고 로얄에비뉴라는 복합쇼핑몰을 지을 예정이었으나 만수시장 상인들의 거센 반발과 교통 포화를 이유로 공사 시작도 못하고 현 상태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만수3동 : 간석동과 상당히 밀접해있어서 간석3동의 상권을 공유한다. 만월산이 동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에 있는 고층아파트인 벽산아파트는 상당히 경사진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만수5동과 마찬가지로 고층아파트보다는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이 주로 있다. 만월산 밑 동네에 아파트(영풍,벽산)가 개발될 때 폐광이 있었다. 벽산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인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선광장에 있던 콘크리트로 지어진 흉물스러운 여러 개의 갱도 연결 구멍이 있었고, 만수3동의 어르신들은 이를 기억하고 있다.

 

 -만수4동 : 만수주공 1~6단지가 이 곳에 있다. 만수로와 백범로가 이 동을 지난다. 1980년대 만수주공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주거지구로 자리잡게 되었고, 1989년 만수2동과 분동됐으며, 만수2동과 상권을 공유한다.

 

 -만수5동 : 만수동 중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노픈 곳으로 고층아파트는 효성상아파트 밖에없지만 골목길이 많고 저층아파트와 빌라가 상당히 많다. 때문에 소득수준도 다른 동에 비해 낮고 밤이 되면 상당히 어두운 동네다. 구월2동과 접해있으며, 구월동의 모래내 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을 공유한다. 그리고 하이웨이주유소가 이곳에 있는데 구월로와 수인로가 만나는 곳으로 서울과 시흥으로 나가는 길목이여서 만수동 교통의 요지다. 2016년 만수역 개업과 함께 역세권이 되었고 만수동의 핫플레이스가 되어서 약속장소로도 많이 잡는다. 술집, PC방, 노래연습장, 카페 등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 효성상아파트 주변에 저층 아파트인 우정아파트를 허물로 단일 고층 아파트로 추정되는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높은 지형에 지어지는 고층건물이라서 롯데월드처럼 근처 동에서 전부 보이는 준 랜드마크로 등극 중이라고..

 

 -만수6동 : 만수3지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으로 지금도 인천시내버스의 행선지 표기시 만수6동대신 만수3지구를 사용한다. 만수동 중에서는 개발이 가장 늦게 된 곳이며, 신설 주택지구의 특성상 동네이름으로 잘 불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인근 서창지구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만수동의 중심 주거지역인 만수2동과 만수4동과는 떨어져서 다른 생활권을 가지고 있으며, 개발이 제일 늦게 된만큼 다른지역에 비해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서창동과 인접해있으며 서창동에 학교가 없을 때에는 서창동 학생들이 남동초로 다니기도 했따. 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만수동 중에서 제일 낮은데, 이는 연수구와 비슷한 때에 개발된 것도 있지만 동의 외곽에 위치한 농지 때문이다. 이 농지는 아시안게임 경기장을 짓기 위한 부지로 선정됐고, 이후 야구장과 럭비경기장 등이 위치한 남동경기장이 지어졋따.

 

 

  6-4. 장수동, 서창동, 운연동

 -서창동 : 90년대 후반 계획된 주거지구인만큼 도로가 잘 닦여져 있기에 도로교통은 좋은 편이다. 자차를 이용하는 경우라면 인천 내 최상의 입지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역은 없지만 바로 옆 운연동에 인천 도시철도 2호선 운연(서창)역이 위치하고 있다. 서창자이아파트, 꿈에그린 등에서는 도보로 10~15분정도면 걸어갈 수 있을 정도다. 

 

현재는 개발이 상당수 진행되어 비싼 땅값을 유지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바다와 인근한 위치 때문에 짠물이 올라와서 농사짓기가 매우 곤란한지라 매우 인기가 없는 지역이었다. 서창2동 서창센트럴푸르지오 앞 문화부지에 2021년 지하2층 지상3층 연면적 2만1천630제곱미터 규모의 세대통합형 복합시설이 들어올 예정이다. 

 

 -장수서창동 : 2000년대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된 동이다. 본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지만 1990년대 후반 서창(구획정리)지구로 선정되어 95년 태평아파트 1단지가 97년 태평아파트 2단지와 몇몇 빌라들이 1차로 지어졌다. 태평아파트만 덩그러니 있떤 시절에는 건설현장이라 벌판만 가득했고 학교도 없어서 2004년 서창동의 첫 초등학교인 서창초가 건립될 때까지는 만수6동의 남동초로 통학하는 신세였다. 이후 2000년대 본격적으로 현대모닝사이드, 임광그대가. 서행그랑블, 서창자이 등의 아파트들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주거지구가 형성되었고 그전과는 다른 깔끔한 환경이 형성되었다. 이후 LH가 주축이 되어 서창동 남쪽에 서창2보금자리주택지구 개발이 시작됐다.

 

 -서창2동 : 2018년 서창동 남쪽에 서창2보금자리주택지구(서창2공공주택지구)가 서창2동으로 분동되었다. 

 

 -운연동 : 전형적인 자연마을과 논밭이 있는 동네로 목장이 많다. 관교동에 있는 인천종합터미널을 이곳으로 옮길 계획이었으나 인천시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한 관계로 무산되었다. 제2경인고속도로가 운연동을 관통하여 교통의 요지다.

 

 -장수동 : 인천사람이라면 한번은 가보았을법한 인천대공원이 있다. 인천대공원이 동의 대부분을 관할하고 있다. 동의 60%를 산이 차지하다보니 주거지구가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다. 주거지는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인천대공원 정문쪽에 수현마을이며 다른 한쪽은 인천대공원 후문쪽에 장수주공아파트를 중심으로 작은 주거단지가 있다. 소래산 부근의 소래터널에도 만의골이라 하는 작은 자연마을이 있다. 수현마을이나 장수주공쪽이나 상업시설은 인접한 동네인 만수동의 의존률이 높은 편이다. 

 

관모산과 소래산을 북쪽에 두고 남쪽에는 장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리를 가지고 있기에 농촌지역으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았다. 거기에 더불어 지하수를 팠을 때 짠물이 나오는 구역의 끝부분인 지역인지라 서창동, 논현동의 개발 이전엔 땅의 값어치가 서창동, 논현동에 비해 높았다. 그러나 대공원이 땅 대부분을 흡수해버려 농경지가 사라져버린 현재는 옛날이야기일 뿐이며 특히 동네의 차량 출입로가 한개 빼고 전부 대공원에 흡수되어버려서 개발 이전부터 살아온 지역주민들에게는 대공원이 애증의 존재다.

 

개발 이전에는 농촌지역이니만큼 동네의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았으나 개발 이후 대공원 중문앞에 위치하는 고급빌라 렉스빌과 장수천 앞에 위치하는 주공 임대아파트의 구역이 나뉘어져있다. 개발 초기에는 이러한 빈부문제 때문인지 동네의 치안소요가 발생했으나 현재는 장수천을 따라 인천대공원으로 향하는 산책로가 만들어지고 산책이나 야외활동을 중시하는 최근의 유행이 겹쳐서 인구 유동량이 늘어남과 동시에 거주민들의 성격이 휴양촌에 가까워져 치안관련 문제는 없는 편이다.

 

 

 

 6-5. 남촌, 도림동

남촌동과 도림동에 조금씩 시가지가 형성되어 잇고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남촌동 남쪽은 남동인더스파크 일부가 조성되어 있따.

 

 -남촌동 : 전형적인 농업지구였던 곳으로 현재도 남촌동의 많은 지역은 그린벨트로 묶여있어서 아직까지 농사를 짓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자연부락이었던 남촌동은 1980년대에 남동인더스파크가 들어오면서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남동인더스파크에서 가까운 이 지역에 많은 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풍림건설에서 풍림 1,2,3차 아파트를 지으면서 남촌동은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다만 아직까지도 풍림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상촌, 중촌, 하촌지역에만 발전이 국한되어 있으며 많은 곳이 그린벨트로 묶여있다. 롯데쇼핑이 매입한 인천종합터미널부지~구월농산물도매시장 부지에 걸친 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될 예정이라 구월동에 있는 농산물도매시장이 이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도림동 : 도림동은 복숭아 밭이 있었던 동네라는 의미에서 도림동이 되었다. 남촌동과 같이 한적한 시골마을이었고 한때 남촌동에 흡수당할만큼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던 동네였다 .하지만 논현지구의 연장선으로 지어진 도림지구가 들어오게 되면서 오히려 남촌동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동네로 바뀌게 되었다. 논현지구의 본격적인 건설에 앞서 도림동의 일부지역이 택지개발지역으로 지정되어 도림주공아파트, 도림 벽산블루밍, 도림 현대아이파크 등의 아파트가 지어졌다. 또한 한적하게 살고자하는 돈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하여 전체적인 삶의 질이 남촌동이나 논현동의 일반동네에 비해서 나은 편이다. 하지만 도림동 역시 많은 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으며 많은 발전을 하지 못한 상태지만 인천 남부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개발이 간으한 토지라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동네다. 교통이 편리한 덕에 도림동 자체의 상권은 거의 없는 수준이지만 주변 주택용지에 빌라들이 속속 지어지고 바로 옆에 서창2지구 공사가 진행중이라 다들 나아지라라 기대하고 있다.

 

 -수산동 :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만수6동과 매우 근접해있다. 100% 그린벨트로 묶여있어서 전원주택과 농업지역을 볼 수 있다. 1993년 도림동에 흡수되었다.

 

 

 6-6 논현동, 논현고잔동

논현지구와 한화지구가 개발되면서 불과 10년 사이에 성장한 지역이다. 논현1동에는 소래포구가 있으며 고잔동은 동 전체가 남동인더스파크에 속해있다.

 

남동구의 신시가지이며, 논현지구로 대표되는 택지지구와 남동인더스파크(남동공단)으로 대표되는 공업지구, 소래포구 주변으로 대표되는 어업지구가 혼합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이기도 하다. 중대형 평수 위주의 대단지 아파트들이 송도국제도시, 영종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에 미치진 못하지만 많은 편이다.

 

처음에 논현지구가 형성되었을 때는 정말 형편없는 동네였다. 인천과 경기도의 시계에 속한 곳으로서 교통의 오지였으며 주변을 둘러봐도 공단과 포구 그리고 산 외에는 이렇데 할 것이 없는 동네였으며, 그 흔한 마트 하나도 없어 연수동에서 물건을 사야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현재의 논현지구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도시화가 급속화로 진행되었고, 한화지구까지 본겨걱으로 개발되면서 상업화 역시 가속화 되어서 인천논현역 바로 앞에 홈플러스와 NC백화점이 들어선데다가 인천논현역과 소래포구역을 중심으로 더블 역세권의 상권이 만들어져서 중심 상권의 규모 역시 인천의 다른 대형 상권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발전한 상태다. 2012년 기준으로 인구가 10만을 돌파하면서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 역시 송도, 영종, 청라를 제외하고는 인천에서 동 기준으로는 상위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논현동은 예로부터 전형적인 반어반농촌이었다. 바다가 인접해있고 비옥한 토지가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1970년대에 고잔동에 한국화약(현재의 한화그룹)의 폭약공장이 들어오자 많은 노동자들이 논현동에서 살게 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논현동과 고잔동의 갯벌을 매립하고 남동공단이 들어오자 철저한 공업지역으로써 발전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공업지대를 제외한 논현동 지역에 신도시계획이 발표가 되고 1998년 논현주공아파트가 들어오기 전까지 소래를 중심으로 한 논현동은 그야말로 농촌지역에 불과했고, 전형적인 슬럼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기존의 논현동의 주거지역을 전부 밀어내고 현재는 전형적인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교육 또한 상전벽해를 이루게되었는데, 논현지구 개발 초기 때는 주변에 초등학교 2개소만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중고등학생들은 연수구나 남동구 중심의 학교로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하지만 택지개발지구가 들어서고 수많은 학교들이 개교하면서 이러한 교육형편은 나아지게 되었고 또한 한화지구에 미추홀외고가 개교하면서 논현지구의 교육여건은 연수동보다도 좋아지게 되었다. 미추홀외고는 인천 관내에서 학업성취도평가 부분에서 최상위를 다투는 학교다.

 

 

 

 -논현1동 : 소래포구가 있는 동으로, 소래포구역이 소래포구 앞을 지나가며 논현주공 8~14단지가 이동에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아파트들이 있으며 전형적인 신도시의 주거지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논현2동이 1990년대 개발된 지역과 2000년대 중후반 개발된 지역이 섞여있다면, 논현1동은 2000년대 중후반 개발된 지역이다.

 

 -논현2동 : 호구포역과 인천논현역이 이 동에 있으며, 구 주공 1,2단지 지역과 논현1~7단지 지역이 논현2동에 속한다. 논현역 4거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되어있ㅇ며, 호구포역 근처에도 소규모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다. 예전서부터 자연부락 마을이 형성되어 잇었으며 현재 휴먼시아 1,2단지에 있었던 산을 넘어가면 바다기에 어촌이 형성되어 잇던 곳이다. 또한 고잔동에 한화 공장이 들어오면서 휴먼시아 3,5단지 쯤에 한화사원아파트가 있었다.

 

1990년 초반 경에 논현1지구와 논현2지구가 설정되었고, 1998년 9월 시범단지 격인 논현1지구 지역의 구 주공 1,2단지가 준공되면서 논현동 지역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1999년 동보아파트, 1998~2000년 사이에 논곡중학교 주변 지역의 연립단지가 개발되었다. 현재의 논현 1~단지 지역은 커다란 산과 달동네로 이루어져있었으나 2005년경부터 산을 깎고 개발이 시작되엇으며 2006년 휴먼시아 주공 1단지에 입주가 시작되면서 발전이 시작되었다.

 

 -논현고잔동 : 남동인더스파크가 있는 공업지구와 에모케트로 단지가 있는 주거지구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동이다. 고잔동은 육지가 반도모양으로 뻗어나가는 지형인 '곶'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예전에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었으나 1980년대에 대부분의 갯벌이 매립되었고, 고잔동의 대부분 지역이 남동인더스파크에 들어서게 되었다. 전형적인 공업지역이다. 특히 논현동에 위치한 남동인더스파크1단지는 단순조립공장이 많아 공해가 덜 하지만 고잔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동인더스파크 2단지는 화학공장 밀집지역이라 공해가 매우 심하다. 또한 고잔동에 민간인이 절대 들어갈 수 없던 한국화약공장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충청북도 보은으로 이전하면서 한화건설이 남은 토지에 에코메트로라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어 상전벽해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 논현2동이 분동하고 나머지 지역이 논현고잔동으로 계속 지속되게 되자 한화 에코메트로 주민들은 반발하여 논현고잔동을 '논현3동'으로 바꾸거나 한화지구만 따로 떼서 '논현3동'으로 만들고 나머지를 고잔동으로 하라는 청원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화지구 대부분의 영역이 원래 고잔동이었단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코메트로 단지에 인천의 유이한 외고인 미추홀외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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