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서울특별시의 중앙부에 자리한 자치구로, 북쪽으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 동쪽으로는 성동구 - 남쪽으로는 한강을 마주보고 영등포구와 동작구, 서초구, 강남구와 인접해있으며 - 서쪽으로는 마포구와 접한다. 한때 서초구 반포동의 이름을 딴 반포로가 있었지만, 용산구 구간은 녹사평대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효로의 경우엔 남영역에서 출발하여 원효대교까지 뻗어있고, 이후 꺾어져 마포대교 방향으로 이어진다. 2018년 신분당선 연장선이 관통될 지역으로도 물망에 오르면서 강남으로의 접근성도 기존보다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용산의 지명은 <중보문헌비고>에서 이 지역의 언덕을 가리켜 '용이 나타났다고 하여 용산이라 했다.'라고 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양화나루 동쪽 언덕의 산형이 용이 있는 형국이라 생긴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름이 龍山이다보니 Dragon Mountai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주한미군이 쓰는 영어로는 Dragon Hill이다. 용산기지에 있는 미군 전용 호텔 이름도 Dragon Hill Lodge이다. 용산역에 가면 으레 볼 수 있는 '드래곤 힐 스파'에서도 잘 드러난다.
용산구의 경부선 및 한강대로 여선 지역은 1914년 성저십리 폐지 당시 유일하게 경성부에서 이탈하지 않았던 4대문 밖 지역이다. 서울시 법정도시계획인 2030서울도시기본계획 (서울플랜)에 따라 용산구는 3도심(한양도성, 여의도, 강남구)을 매개하는 7광역 중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용산역 인근이 중심지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2. 역사
고려 초기에는 과주(지금의 과천시)에 속했으나, 지금의 용산구 일대가 부원현으로 나가떨어졌고 후에 남경에 편입되었다가 한성부 편입 직전에는 고양군 부원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는 조선의 한성부 용산방, 서강방, 일제강점기의 고양군 용강면에 속했던 마포구 동부와 용산구 서부 이야기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성저십리 용산방(원효로, 용문동, 효창동 등 서부지역), 한강방(한남동 등 동부지역), 둔지방(한강로, 이촌동, 용산기지 등 중부지역) 지역으로, 1914년에는 서울역 주변 및 한강대로(경부선) 주변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용강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36년 경성부로 재편입되었다.
1943년 구제 실시에 따라 설치된 영등포구, 용산구, 중구, 종로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성동구 7개 자치구 중 하나이며, 16개 행정동을 거느리고 있다. 해방직전인 1944년 용산구 관할이었던 염리동, 용강동, 도화동, 대흥동이 신설된 마포구에 편입되었으며, 1975년 중구 동자동을 편입한 이래 현재의 행정구역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에는 언뜻 보기에는 무심하게 여기기 쉽지만 서울특별시 한가운데에 있어서 한국 국방의 중심지이다. 이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조선군(한국 주둔 일본군) 사령부 및 주요 병력의 주둔지가 현대 용산구에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대한민국 국방부 및 합동참보본부가 용산에 자리잡았으며, 1989년 계룡대로 이전하기 전에는 대한민국 육군 본부도 용산에 있었다. (현 전쟁기념관 자리) 또한 주한미군사령부도 용산에 있었으나 평택으로 이전하였다. 자리가 워낙 좋아서 임진왜란 때의 왜군이나 임오군란 당시 청군도 여기 주둔했었으니 말 다했다. 또 한국 제과산업 발상지도 바로 용산구인데, 롯데제과와 오리온, 해태제과 3대 제과 메이커가 용산에서 창립했기 때문이다.
3. 지역 특징
동네별로 특성은 물론 생활권이 크게 차이나서 <로마7언덕>처럼 하나의 구로 볼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일단 구의 정중앙에 자리한 엄청난 크기의 ①'용산기지'가 구를 동서남북으로 쪼개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②경부선 철길이 서쪽을 다시 동서로 거의 완벽하게 가른다. 게다가 도로 위주의 동쪽도 ③반포대교~녹사평대로와 한남대료~한남대로가 또 쪼개어 놓는다.
용산구의 중심지역은 용산역 주변으로, 특히 2004년 용산역 민자역사가 개통되면서 호남선의 시발역이 된 철도교통의 요충지이다. 마천루인 용산국제지구 업무구상 논쟁도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본 사업계획은 여러가지 사유로 인하여 취소됨.
용산국제업무지구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3가, 이촌2동에 있는 용산역의 철도 차량사업소와 그 주변지역을 철거하고 대규모 업무지구와 명품 수벼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개발 프로젝트다. 용산역 역세권개발사업에 해당하며, 개발 면적은 용산철도기지 + 서부이촌동을 합친 0.566㎢이다. 사업 지역 대부분은 용산구 한강로3가에 해당하며, 서부이촌동 추가부지는 이촌2동에 속한다.
2005년 당시 건설교통부에 의해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2007년 개발계획이 정식 발표되었다. 예정 사업비는 31조원으로, 철도 부지가 끼어 있어서 한국철도공사가 주관사를 맡고 삼성물산이 사업자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2007년 12월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와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사업이 무산되었으며, 현재 두회사는 전부 파산해서 사라진 상태다.
속칭 단군이래 최대의 개발 프로젝트였다. (실제로는 약40조원이 투자될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가 개발규모는 가장 큼) 총 비용이 대한민국 전역에서 개발을 한 3대강을 제치고 2위다. 용산은 31조원, 4대강 사업은 23조원이다. 그리고 페이퍼플랜까지 합치면 317조원짜리 에잇시티라는 것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사업이 시행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저기 나타나면서, 최악의 전시행정 사업으로 기록되었다. 땅을 통째로 밀어버리고 계획취소가 되어버리는 비극이 찾아왔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다못해 나무도 자라면서 작은 숲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후 2014년 일부 지역을 포장하여 현재는 주차장으로 사용 중이다.
-2008년 이후
2011년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을 헐어버리고 서울우편집중국을 폐쇄한 이후 현재까지 제대로 된 사업 시행을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 때문에 자금사정이 곤란해진 삼성물산이 2009년 초 사업시행자 지위를 포기하면서 롯데관광개발이 대타로 들어왔는데, 한국철도공사와 롯데관광개발이 개발사업의 방향을 놓고 2009년 이후 7년동안 마찰을 빚고 있다.
한국철도공사 측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인 용산개발을 1,2,3단계 단계적 개발로 전환하여 자금 투입을 분할하여 개발하는 입장이고, 롯데관광개발은 이미 철도차량사업소도 헐어버렸고 개발부지인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를 못하게 막아버린 상황이므로 단계적 개발도 전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는 2010년부터 계속 부도위기에 몰려왔는데, 그때마다 한국철도공사나 롯데관광개발이 망하게해서는 안된다며 2년 넘게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 등의 방법으로 자금지원을 하며 망하지 않게끔만 유지하고 부도위기를 넘기면 다시 개발방식을 놓고 대립각을 펼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2012년 이후
2013년 2월 말, 한국철도공사도 지원을 거부하면서 (정확히는 담보제공중단) 부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국철도공사의 담보제공이 최후의 자금줄이었는데 사라져버렸고, 우정사업본부에게 판결상 받을 돈이 있긴하지만 이것도 우정사업본부측에서 항소하거나 집행을 늦게 해버리면 끝나는 것이라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관점이었다.
그러다 한국철도공사가 삼성물산에 대출의 출자전환을 통해 용산개발 지분구조를 재편하여 사업을 정상화하자는 제의를 했다는 기사가 나오더니, 바로 이틀 뒤인 2월 28일 롯데관광개발이 보유 지분 45.1%를 한국철도공사에 넘겨버리고 사업을 포기하기로 하면서 용산개발이 다시 정상화 궤도에 올라서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용산개발 재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몽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박원순 시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축소된 형태로 분할 개발될 것으로 보였다.
-최종부도
사업이 정상화 되는 줄 알았는데 자금조달에서 삼성물산이 2조4천억 유상증자를 거부함에 따라 또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 2013년3월13일까지 한국철도공사와 롯데관광개발 등이 자금마련에 실패하면서 최종 부도를 맞았다. 이에 따라 용산개발은 사실상 좌초되었다. 만일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면 현재까지 추산되는 매몰비용(회수불가 자금)만 1조이고, 한국철도공사는 토지를 돌려받는대신 2조4000억~2조7000억을 반납해야한다고 하는 판이다.
헤럴드경제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철도공사가 태도를 바꾸면서 용산개발이 다시 정상화 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국토해양부가 당초 용산개발 불간섭에 엄청난 사회적 파장때문에 정상화쪽으로 태도를 바꾸게 되었고, 박근혜 대통령도 4월15일 코레일이 잘 판단해서 조정을 통해 갈등을 수습하길 바란다는 언급을 한게 결정적인 전환점이라고 한다. 한국철도공사는 정부의 태도변화에 따라 민간투자사들과의 협상 태도를 바꾸어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청산작업은 진행중이지만 특별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다시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것. 이후 전개과정을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였다.
-지정해제
2013년9월5일 한국철도공사가 토지대금을 상환하여 컨소시엄측이 소유한 토지가 2/3에 미달하게 되었다. 이후 10월 10일 최종적으로 서울시가 지구 지정을 해제했다.
-이후소송
사업 무산 이후 한국철도공사와 시행사인 드림허브(롯데관광개발)측에서 대규모 소송전으로 이어졌는데, 2014년1월에 제기하고 2015년11월24일 1심에서는 한국철도공사가 승소하였다. 다만 드림허브 측은 즉각 항소할 뜻을 보이고 있어 결국 대법원까지 가야 결론이 날 상황이었다. 이후 드림허브가 포기하면서 한국철도공사가 최종 승소했다.
그리고 그 당시 한국철도공사 사장이었던 허준영은 용산 개발 관련으로 3년동안 불법정치자금 총 1억 3천만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2017년3월16일 대법원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2년, 추징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1억이상 뇌물을 받으면 특가법으로 인해 가석방없는 10년이상 징역형이 확정인데,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바람에 송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었다.
-재추진
2015년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및 정부의 경기부양책 등의 논의에 따라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토교통부 등의 중재로 사업 재개 논의가 물밑에서 있다. 아예 한국철도공사와 롯데관광개발 등을 전부 손떼게하고 미국이나 중국, 중동 자본에 부지를 통째로 팔아넘겨서 재개발 사업을 재개하자는 논의인데, 한국철도공사나 롯데관광개발이 합의를 본다면 이런식으로 재개할 수도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와 롯데관광개발 간 소송이 워낙 장기화되는데다가 판도 엄청 큰 사업이라 기적적으로 합의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일단 정부에서는 계속 중재를 시도하는 모양이다. 2014년 서부T&D가 중국의 녹지그룹고 ㅏ연계해서 사업권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단 서부이촌동 부분은 용산국제업무지구 부지에서 제외하여 자체적인 재개발 사업으로 전환키로 했다. 서울특별시에서 2015년8월5일 계획을 발표하였고, 2015년12월10일 서울특별시에서 용적률 300%로 제한하는 재개발안을 의결했다. 2016년1월20일 한국철도공사 측에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재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송 및 서울특별시와의 협의 문제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미리 준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서울특별시에서 2018년6월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고 2021년 착공한다고 하였으나, 발표 예정이었던 마스터플랜은 주변 집값의 상승으로 잠정 보류되었고 환경정화작업을 우선 실시하고 있다.
-미니신도시 계획
2020년5월6일, 국토교통부는 '소두권주택공급기반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 부지에 8000세대 가량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2018년 박원순 시장의 용산 마스터플랜이 좌초된 이후 2년만의 개발 계획이다. 공급되는 8000세대는 주상복합으로 추진되며, 이 가운데 일반 분양은 5600세대 가량이고 나머지 2400세대는 임대주택으로 조성된다. 2022년까지 관련 구획지정 등을 마루리하고 2023년 이후 착공할 예정이다.
과거 국제업무지구 계획과 비교해보자면, 서부이촌동을 계획에서 제외해 구 용산정비창 부지에 개발이 집중되게 하였으며 주택 공급량이 6000세대에서 8000세대로 증가하였다. 다만 전체적인 주거면적 비율은 국제업무지구 추진 당시 50%에서 30%로 축소되었다. 이는 국제업무지구 추진 때에는 대형평수 위주의 주택이 계획되어 있던 반면 이번 계획에서는 절반을 차지하는 임대주택이 소형평수 위주로 구성될 예정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국토교통부의 발표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주상복합 이외에는 업무, 상업시설 등 도시개발에 따른 부대시설도 조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 발표 이후 주변부로 부동산 열기가 또다시 과열되는 양상이다. 9억이었던 청파동의 한 건물이 14억에 팔렸고, 인근 아파트 매물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이에 국토교통부느 용산 일대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여 거래를 조정하겠다고 하였다.
2021년 하반기에 새로운 설계공모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지상 111층이 높이 621m짜리 트리플 원 빌딩이 랜드마크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그외에도 200~400m짜리 초고층 건물들의 숲으로 계획되었다. 특히 이 건물은 제1랜드마크 건물이었고, 지상 88층에 높이 440m짜리 부티크 오피스텔 타워가 제2랜드마크로 계획되어 있었다.
가로본능을 연상케하는 주상복합 바 타워도 있었다. 이 빌딩은 특히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시 이주해야 할 서부이촌동 주민들을 입주할 계획이었다고는 하나 결국 무산되었다. 특히 네덜란드 디자이너 3인이 디자인했던 고급주상복합빌딩 "더클라우드"빌딩은 911테러를 연상시킨다고하여 여러 논란에 휩싸였던 바 있다. 해당 디아지어는 빌딩 사이에 구름이 껴있는걸 디자인한 것이라고 해명하였으나, 건물 디자인 자체가 구 세계무역센터와 비슷한 모양이었기에 논란이 확산되었다.
-서부이촌동(이촌2동) 문제
2006년 부동산시장 활황기에 추진된 초창기 계획 당시에는 서부이촌동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따라서 서부이촌동 주민들도 초창기에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들어서면 업무지구 통근객들한테 물건을 팔 상권이 형성될 것이라 생각하며 반대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 계획과 연계해 서부이촌동을 개발부지에 포함하고 이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버리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세훈은 주민동의를 받았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시행사의 온갖 사탕발림에도 불구하고 50%를 간신히 넘는 동의를 얻었을 뿐이라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서부이촌동을 포함하지 않고 용산역차량사업소 부지만 가지고 원래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토지 보상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텐데... 사업무산의 주범인 셈이다. 안그래도 위험요소가 많았던 사업에 수천명의 주민들이라는 개발사업의 이해 당사자를 끼워넣으면서 사업속도를 지연시켰고, 가뜩이나 빚을 내서 하는 사업이 지연될수록 빚이 더욱 불어나면서 사업은 겉잡을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용산참사와의 연계성
용산참사가 터졌던 용산4구역(한강로3가 지역)은 1993년 주거개선사업단지로 지정되어서 재개발이 추진되었던 지역으로, 외환위기를 맞아 사업이 한 차례 중단된 뒤 다시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2012년에도 사업자가 나오지 않아 사업이 중단된 상황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와는 큰 연관성은 없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그에 부속된 주변사업지구, 이 지역에 대해서 드림허브가 개발하도록 되어있으나 나머지 지구는 부속되어 있지 않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주변사업이라 해도 용산4구역 남일당빌딩쪽하고는 연관이 없다. 서부이촌동, 즉 이촌2동 주민센터 주변쪽과 용산 전자상가 재개발 정도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연계된 재개발이 추진되는 사업구역이다. 또한 용산국제업무지구가 현재의 계획으로 확정된 것은 2006년이다.
-신분당선 용산 연장
신분당선이 용산공원과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배후 철도 노선으로 잡혀있다. 따라서 국토해양부와 대한민국 구고히에서는 신분당선 강남역~용산역 구간 단독 연장을 2012년에 확정하였다.
신사역~용산역 구간은 2019년에 착공해서 2025년에 개통할 예정이었으나, 2020년 초까지 용산미군기지 반환 문제로 인해 용산~신사 구간은 착공은 커녕 지반조사조차도 못하고 있다. 결국 2027년으로 연기되었다.
강남~용산 노선 설계가 완료되고 착공을 앞두던 2013년 초,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사업 참가사들간의 이해 관계로 인해 파행을 겪다가 결국 무산되면서, 용산 개발을 전제로 계획했던 강남~용산 구간은 이로 인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결국 2013년 4월 예정되었던 강남~용산 구간 착공이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2014년12월23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중단으로 사업 추진이 불투명했던 용산~강남 구간의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2015년 10월에 뉴스기사가 '착공이 내년으로 미뤄졌다며, 국토부는 한강 이남 구간을 우선 착공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강남대로 구간을 우선 건설하기로 한다는 소식과 함께, 새서울철도(주)와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을 체결할 계획으로 2016년8월 착공될 예정이었으나, 사업참여 기업에 변동이 생기면서 2016년 하반기 중으로 착공하기로 하였다. 2016년8월9일 신분당선 강남~용산구간 실시계획 국토교통부 고시가 승인되었다. 우선 신사~강남구간만 착공될 예정이다. 신사~용산 구간은 용산미군기지가 반환되는대로 착공하기로 했다.
2016년8월30일 용산~강남 구간을 둘로 나눠서 신사~강남 구간을 거창한 기공식없이 공사 개시를 선언했다. 용산~신사 구간은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하는 2017년 착공할 계획으로, 2016년8월30일 착공한 신사~강남 구간은 2022년5월28일에 개통할 예정이며, 아직 착공되지 않은 용산~신사구간은 2027년을 개통 예정일로 잡고 있다.
-의의
단군이래 최대 랜드마크를 꿈꾸게 되었고,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업무지구를 만든다는 꿈에 부풀어서 기대를 하게 되기도 하였지만 사업 진행부터 큰 난관에 걸리게 되었고, 코레일과 건설사들 사이에서의 갈등과 분쟁 그리고 주민들과의 갈등과 분쟁까지 겹쳐서 처음부터 출발이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저 랜드마크를 꿈꾸는 것에 편중하다보니 결국은 이렇게 망했다는 평가가 대세적이었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주민들을 어떻게 달래느냐도 숙제로 남아있으며, 한국철도공사와 건설사 간의 이권분쟁과 갈등도 커다란 후유증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용산개발은 처음부터 실패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는 지적도 많다. 부동산 개발에 도가 튼 미국, 중국 등에서도 한번에 시도하지 않은 대규모의 재개발 사업을 한큐에 삽을 떠서 완공까지 노렷으니 리스크 역시 그만큼 큰 사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대지면적은 초기 약 44만제곱미터에서 서부이촌동 지역을 포함한 후 56만제곱미터까지 늘어났다.
일본 도쿄에서도 그나마 좀 큰 규모로 진행된 도심 재개발 사업 중에 롯폰기힐즈도 고작 11만여제곱미터 정도의 면적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사업 착수부터 완공까지 무려 17년이나 걸렸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인민광장도 롯폰기힐즈보다 규모가 작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2017년 현재까지 방치되었으며, 2017년 6월부터 공사를 재개할 예정이라는 소문 ...
심지어 세계적으로 돈이 철철 넘쳐흐르기로 유명한 뉴욕에서도 Batter Park City라는 도심재개발 사업부지 면적이 용산국제업무지구보다 작은 37만여 평방미터였으나 1960년대 개발이 시작된 이래 아직도 그 부지는 다 들어차지 않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수많은 이해관계가 대립된 도심에서의 재개발사업이란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한 예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사카역 일대 재개발 사업의 경우도 아직 오사카역 북쪽에 있던 화물역이 헐린 이후 몇년째 개발방향조차도 잡지 못하고 비어있는 땅으로 방치 중이다. 부지 면적이 현재 오사카역 신축역사로서 건설 완료된 오사카 스테이션 시티보다 넓다. 오사카 일대 최고의 금싸라기 땅임에도 몇년째 삽조차 못뜨고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땅 때문에 오사카역에서 신우메다시티 방향으로 갈 때 많은 애로사항이 나타나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롯폰기힐즈의 4배, 최종적으로 서부이촌동이 포함되어 5배 이상 큰 지역에서 사업을 시도함에도 계획을 발표한 2007년으로부터 완공시기를 겨우 10년 이내로 잡고 있었다. 정작 착공 예정일을 한참 넘긴 시점에서도 삽은 여전히 전혀 뜨지도 못하고 누가 돈을 더 낼지만 가지고 아옹다옹하고 있던걸 보면 지지부진했던 것이 당연한 결과다.
이정도 규모의 개발사업은 그만큼 외부 악재에도 취약하다보니 2008년 금융위기도 용산국제업무지구를 휘청이게하는데 큰 몫을 했다. 이 지구에서 공급 예정인 업무공간 규모가 너무도 크다보니 경제위기가 오자마자 사업의 지속성에 의문을 가지는 투자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으며, 당시에 서울의 도심, 강남, 여의도권에 공급되기로 한 오피스가 이미 과포하상태였기에 용산개발에 대한 메리트가 크게 부각되기도 힘들었다.
당시 오피스 수요도 생각하지 않은 채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한번에 시도하지 않은 규모의 도심재개발을 무리하게 짧은 시간에 진행하려고 한 측면에서 결국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미래는 애초에 결정이 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완공된다고해도 수요가 없으면 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심지어 여의도의 경우도 2019년 5월 기준으로 낮아지고 낮아진 오피스 공실률이 10%내외다. 이마저도 낮은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는 서여의도권이나, 한국거래소~KBS별관 사이에 밀집한 중소형 오피스빌딩 덕택에 수치가 낮아진 것이다. 전경령회관, 서울국제금융센터 등 프라임급 오피스는 여전히 공실률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괜히 파크원 착공 이후로 증권사들이 여의도 건물 팔고 도망가는게 아닌 상황이다. 이렇게 용산국제업무지구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오피스사업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마당에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무사히 완공을 했어도 오피스임대시장에서는 헬게이트가 열렸을 확률이 매우 높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끝!
용산역 인근 용산 전자상가는 전자기기 계열의 3대 레이드 던전(+국제전자센터, 테크노마트 or 세운상가) 중 하나로, 조립컴퓨터와 각종 컴퓨터 부품 등을 싼 값에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에도 숙명여대 인근의 1호선 남영역, 4호선 숙대입구역, 6호선 이태원역, 녹사평역 주변도 용산구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이다. 그렇기에 부촌이면서도 노숙자들이 대단히 많다는 특이점도 있다. (이태원역 쪽에는 외국인노숙자들이 많이 보인다.)
한남동, 이태원동, 보광동, 용산동, 후암동, 효창동 등 유난히 언덕 지형이 많다. 한남대교를 건널 때 북쪽으로 보이는 인상적인 달동네가 바로 한남동이다. 이태원동은 경사도가 엄청난데도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고급주택들이 늘어서있어 이질감을 준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기에 좋지 않고, 부담없이 마실 나가서 쉴 만한 가까운 공원도 드물다.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이촌과 서빙고 일대는 강남 못지않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으며, 이태원동/경리단길/해방촌 일대는 미군기지와 대사관들이 인접해 있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가가 들어서있다. 참고로 이 일대에는 대사관들이 정말 많다. 차량정체가 극심한 곳이 여러군데 있다.
동부이촌동/한남동/이태원동 일대와 그 밖의 지역은 경제수준이 제법 차이가 난다. 대치동 부모가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학원가를 찾고, 압구정 부모가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유학을 고려한다고 하는데, 동부이촌동의 경우에는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괜찮아. 너 평생 먹고 살 건물이 있단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또 다른 부자 동네인 태원동/한남동은 대부호들이 넘치는 곳이다. 이건희에게는 집이 3채 있는데 이곳 이태원동과 삼성동, 장충동에 있다.
경제력, 투표 성향 등에 있어 용산기지를 경계로 남과 북 (혹은 한강대로를 기준으로 동과 서)이 나뉘어있는 형태다. 한강이 접해있는 수변지구 일대는 땅값과 건물값이 강남보다 더한 곳이다. 동부이촌동/용산역주변/남영역/4호선 숙대입구역 주변/이촌과 서빙고일대/이태원동 일대/ 한남동/ 수변지구 일대 외 지역은 강북의 평균 수준도 못 되는 곳이 많았다. 최근 개발붐이 일면서 땅값이 오르긴 했으나 수변지구에 비하면 아직 새발의 피다. 과거 수십년째 개발이 정체된 남영역/숙명여대/삼각지역 일대는 최근 개발 붐으로 큰 주상복합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으나 서울역과 인접한 청파동/원효로 쪽은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다. 그나마 남아있던 용산구청까지 이태원으로 이전했으니 ...
정식명칭은 용산구 종합행정타운으로 당시 크고 아름다운 유리궁전으로 호화논란이 있었다. 서울시청 건립 백지화 이후 호화 소리를 들었던 녹사평역과 썩 잘 어울린다. 2013년 동아일보/SPACE가 선정한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 8위로 선정되었는데, 선정된 곳 중에서 구청은 여기가 유일하다.
용산 미군 기지나 대사관 등의 이유로 외국인과 그 가족이 많이 거주한다. 거기에 이태원 등지로 모여드는 주한 외국인이나 해외관광객까지 합쳐져 대한민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특히 밤의 이태원 중심가에서는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철도들과 괴랄한 환승 때문에 서울 지하철 6호선을 제외하고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남영역을 꼭지점으로 ㄱ자로 철도 반대편에 사는 쪽들이 완벽하게 분리된다. 용산역과 신용산역의 직접 환승이 안되는 것도 하나의 예다. 과거 용산구청은 동부에서의 접근성이 심하게 떨어졌다. 한강을 건너 동작구와 관악구가 남북 지하철 교통이 불편한 것과 비슷하고도 다르게 이곳은 동서 지하철 교통이 불편하다는 특징이 있다.
4. 경제
서울 자치구들 중에서 최상위권이다. 비록 강남3구로 대표되는 강남구/서초구/송파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종로구/성동구/성북구와 더불어 강북에서 최고로 잘 사는 곳이다.
대기관 장관, 차관의 관저들과 대기업 회장님들의 사저들이 죄다 여기에 모여있다. 흔히들 고위공무원과 대기업 재벌들이 무조건 강남에서 살고 있을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재벌 3세 이하 고위공무원들 자녀들과 대기업 임원 자녀들이 강남에서 사는 경우가 많고, 진짜 고위공무원들과 대기업 임원들은 강북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기타 공공기관 공무원들과 대기업 직원들을 위한 관사들도 용산구에 많이 있다. 물론 현실의 공기관 공무원들과 사기업 직원들은 월세가 싸지만 사생활이 강력히 통제되는 관사보다는 월세가 비싸더라도 사생활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원룸이나 투룸을 마련해서 사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긴 하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동네(특히 한남동, 이태원동)라서 외국인들을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존재한다. 다만 2020년에 터진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외국인들의 서울 방문이 매우 쪼그라들면서 용산 아니 서울의 모든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는 등 제대로 폭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의 산하 자치구들 중에서 미래가 상당히 밝은 자치구다. 비록 청와대 용산구 이전과 서울특별시청 용산구 이전과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건립은 실패했지만, 여전히 용산구는 경제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동네다. 3차 산업을 통해 일취월장하고 있는 실정이며, 여기에 신분당선이 강남역에서 용산역까지 연장되면 더욱 더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이유는 기존 버스 외에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덕분에 경제 활성화가 제대로 되어 용산구가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장병들이 근무하는 용산기지가 용산구 개발에 있어서 엄청난 걸림돌이었으나, 다행히도 경기도 평택시로 옮기게 되어 신분당선이 제대로 삽을 뜰 수 있게 되었다.
5. 각종 시설
5-1. 경리단길
도로명주소 상의 명칭은 회나무로이다. 번화가라 하기엔 조그마한 편이고, 이태원동에 속한 지역이지만 이태원과는 이질적인 분위기 때문에 유명했었다. 과거 육군중앙경리단(현재의 국군재정관리단)이 이 길 초입에 있어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상권은 국군재정관리단을 중심으로 언덕길과 녹사평역 방향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근처에 외교공관도 여럿 있다.
용산미군기지와 가깝기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던 2000년대 초까지만해도 옆동네 해방촌과 마찬가지로 그냥 외국인 좀 많이 돌아다니는 소박한 주택가였다. 클럽, 술집 등 상업시설은 주로 이태원에 몰려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기껏해야 저렴한 밥집이나 시장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평택으로의 미군기지 이전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식당이나 술집같은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식당보다는 분위기 좋은 술집이나 카페가 많아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한때는 힙스터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지만 요새는 연남동과 합정역으로 많이들 옮겨갔으며, 유명세를 타면서 그들 또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 유명세는 어디가지 않았는지 이후 다른 동네나 다른 도시 일대에 새로이 형성된 카페/술집/옷가게 골목들을 "~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많아졌는데, 대표적인 예로 망원동쪽의 망리단길, 석촌역과 석촌호수 동호 일대의 송리단길, 봉천동 쪽의 봉리단길, 수원의 행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 순천의 옥리단길이 있다.
*경리단길의 성공 이후 경리단길을 패러디한 'X리단길'들이 생겨났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지명들이 전국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지명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모두 경리단길의 이슈와 성공으로 인해 생겨난 아류들이다. 애초에 경리단길이라는 이름 자체가 '육군중앙경리단'에서 유래한 지명이기 때문에 '경+리단'이 아니고 '경리+단'인데, '경리단길'에서 '경'만 바꾼 해괴한 이름들이 생겨나게 된 셈이다. *
원래 좁은 동네였기에 차도도 2차로이고 인도도 매우 좁다. 가게가 늘면서 주변의 주택을 개조해 가게르 내고 있다. 싸게 식사를 하기는 힘든 동네로, 분위기 위주의 가게가 많아 요리값이 비싼 편이다. 게다가 모텔도 거의 없기에 정말 놀러만 오는 동네다. 이태원동의 경우엔 모텔이 10만원에 가깝다.
2018년 들어서 경리단길이 예전의 활기를 잃고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연예인 홍석천씨가 경리단길에 부쩍 가게를 내놓는 일이 많아졌다면서 경리단길을 살려달라는 절규 섞인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물론 홍석천씨 말고도 이름없는 소상공인들과 평범한 시민들 역시 경리단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위앙스의 말을 하는 것을 언론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유인 즉슨 쉽게 설명하자면 처음에는 입소문을 타서 자연스럽게 손님들과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장사가 잘되고 매출이 올라서 그에 힘입어 상권이 활발해지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건물주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더니 매출이 제법 늘었다 싶으니까 그에 맞춰서 임대료를 3배 이상 올려버렸다.
다만 초대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려서 쭉 운영한 것은 아니고 임대료를 올린 다음 건물을 팔아넘긴 경우도 꽤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올린사람 따로 피해보는 사람 따로 인 경우도 제법 된 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도 해당 건물을 사서 임대료로 재미를 본 다음 다시 건물을 팔아넘기는 식으로 진행하려 했겠지만 예상보다 상권이 일찍 무너진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즉 선량한 피해자라기보다는 폭탄돌리기에 당한 정도로 볼 수 있다.
거기에 호황을 누리던 시절과 다르게 그 1~2년 동안 50%이상 손님들이 급감했다고 하니 임대료 상승에 매출 감소까지 겹치게 되자 일반 자영업자들은 버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애초에 아주 특출난게 없이 순전히 가게의 분위기만을 보고 비싼 값을 치르던 지역인데 그 컨텐츠가 훼손되니 갈 이유가 없어져서 쉽게 무너지게 된 것이다. 결국 그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주체는 일부 자영업자들을 제외하면 일부 대기업 프렌차이즈 업체들 뿐이고, 자연스럽게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젠트리피케이션의 본래 의미는 '낙후된 지역을 고급화하다'이지만, 경리단길에서는 결코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의미다.
2020년 기준으로 코로나19가 심해짐에 따라 상권 자체가 유령도시가 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명해지기 전 주거지역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보면된다. 관광지화되기 전으로 돌아갔으니 주민 입장에서는 더 반길만한 현상인 셈이자 임대업자들에게도 정의구현한 것이다. (애초부터 명동처럼 상업구역이 아니라 고깃집, 과일가게, 미용실 등이 있는 그냥 사람 사는 동네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꾸준히 잘 나가는 곳이 일부 남아있으며 외국인도 적잖이 눈에 띈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완전히 망해버렸다. 안그래도 2018년 시점에서 지나치게 비싼 음식 가격, 경사가 심하고 좁은 부정적인 상권입지와 불편한 교통 (주차문제, 세간에 알려진 건물주들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 등)으로 인해 몰락한 곳이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한 전체 이태원 상권의 대몰락으로 마지막 남아있던 촛불 한 개마저 꺼졌다. 상권이 활발해서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2015년까지의 풍경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다. 개선공사를 하기로는 했으나 잘 될지는 미지수다.
5-2. 남산
유래는 조선시대의 궁궐인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앞에 남산이기 때문에 남산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한양 시가지는 사대문 안만 포함되었기에 현재 위치가 서울의 남쪽이 아닌데도 남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옛 이름으로 목멱산, 인경산이 있다. 아무튼 남산은 옛 한성부의 안산이기도 하다.
남산에 올라가보면 송신타워인 남산서울타워가 있으며 팔각정, 남산 봉화대 등 몇몇 볼거리가 있다. 그 외엔 그다지 볼 것도 없으나 일단 정상에 올라가보면 서울의 모든 풍경이 다 보이는 것은 맞다.
1961년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남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었다. 이후 남산 외인아파트, 숭의초/숭의여중/숭의여고/숭의여대, 남산아파트, 리라초등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남산은 거의 인간의 놀이터가 되어갔고, 이에 따라 경관 파괴라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갖추기'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남산 살리기를 본격화한다. 그 성과로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가 철거됐고 남산의 이미지를 어둡게 만들었던 국가안전기획부 본청을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기고 별관 관멀도 1996년 철거했으며 필동에 있던 수도방위사령부를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전해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하는 등 남산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남산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이 있었다. 세기문화사라는 위장명칭으로도 불렸으나 '남산'이 당시 정보기관을 일컫는 대명사로 쓰였으며, 남산에서 나왔다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떠는 시대가 있었다. 이로 인해 은어로 '남산에 간다'란 말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죄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을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두 발로 걸어나오면 다행인 정도.. 이후 국가안전기획부가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구 중정-안기부 건물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로, 구 안기부장 공관은 '문학의 집 서울'로, 안기부 체육관은 '남산창작센터'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안기부의 면회소 역할을 한 주자파출소는 현재 철거되었다.
5-3. 드래곤 힐스파
서울특별시 용산에 위치한 찜질방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어마무시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옥상까지 합쳐 무려 7층으로 이루어져있고 오락실은 큰 번화가에 위치한 보편적인 규모를 가진 오락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으며, PC방도 일반 찜질방에서 쓰는 낡은 PC가 아닌 고사양 그래픽 카드와 모니터를 탑재한 PC가 배치되어 있어서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도 플레이 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 목욕탕도 층수를 구분해서 뒀으며, 수영장과 패밀리 스파같은 시설들도 갖춰져있는 것은 덤이다. 물론 그 커다란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비용은 상당히 비싼 편이라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일본어 안내가 우위를 점했으나 2010년대 후반에는 중국어가 다수를 차지한다. 2020년대 초반에는 한국어까지 위협당하는 듯하다. 중국어와 한국어의 비중이 거의 1:1이다. 2020년 초반 기준으로 이곳을 이용하는 이용객 중에서는 한국인을 찾아보기가 더 힘들정도로 중국인 손님이 많다.
5-4. 용산 전자상가
5-4-1. 개요
정식명칭은 용산전자상가지만 그냥 용산이라고 하거나 용던이라고도 부른다. 던전마냥 복잡한 구성과 다양한 윙, 다양한 득템 같은 용산의 전체적인 특징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이곳 소매상들은 도매상한테 물건을 들여와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므로 도매상도 들려보는게 좋다.
전자상가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김장시장 부지였으나, 청과물시장을 가락시장으로 이전시키고 그 부지에 청계천 상가의 대림, 세운상가 전자상인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만든 일종의 계획시장이자 계획상가이다. 1987년에 개장한 이래 현재까지 어어져 내려오고 있다.
컴퓨터하드웨어, 주변기기, 게임소프트 등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성지나 마찬가지인 곳으로, 테크노마트나 국제전자센터 등의 경쟁상대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역사가 오래된데다가 워낙 위치가 좋다보니 여전히 서울의 대표적 전자상가로 자리잡고 있다. 최신 전자제품, 오덕 굿즈와 70년대 분위기의 쇠락한 부품가게가 공존하는 분위기를 매력으로 느끼는 이들도 많다.
콘솔게임 판매처 및 이에 부수적인 일본 서브컬처 관련도 역시 2000년대까지는 국내 굴지의 악명과 유명세를 자랑하고 있었으나, 2000년대 초 복사단속, 1997년 외환 위기의 후유증 등의 악재로 인해 콘솔업체가 통신사 대리점으로 전부 업종을 변경하여, 비디오게임 용팔이 사망론이 나올 정도로 극소수의 매장만 근근히 연명하던 시절도 있었다. 요샌 또 약간 늘긴 했지만 아무튼 콘솔게임 판매처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며, 그래도 살아남은 매장 중 의외로 꽤나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점포들도 있다.
용산구와 마포구 동부(공덕동, 도화동)에 사는 사람들은 아예 전자제품 쇼핑을 할 때 전가의 보도인 방문수령 옵션을 걸어놓는 경우가 많다. 원효로동은 아예 걸어가서 수령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원효로동엔 용산을 기반으로 한 전자제품 업체들이 AS센터 및 소규모 물류창고를 그쪽에 두는 경우도 많다.
5-4-2. 상가 구성
상가는 원효대교 쪽부터 순서대로 전자랜드(1~3동), 원효상가(4~9동), 나진상가(10~20동), 선인상가(21,22동)이다. 후에 터미널상가와 한신전자타운, 스페이스9(현재의 아이파크몰 디지털전문점), 아이피아대주피오레가 지어졌으며, 용산전자상가로 같이 묶어서 다루지만 아이파크몰은 다른 상가들과는 완전히 별개로 굴러간다. 참고로 나진상가 16동은 현재 농협중앙회 서울지역본부로 사용중이다. 상가별로 파는 물품이 다르기에 이에 대한 것을 숙지하고 가야한다.
5-4-2-1. 전자랜드 (1~3동)
전자랜드는 다른 상가와 달리 SYS리테일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체인점으로 전국에 점포가 있다. 최초 컨셉도 다른 상가와느 달리 양판점을 표방하고 나섰다. 당연히 용산의 전자랜드가 본점이다. 그러나 본점과 달리 지점들은 하이마트나 일렉트로마트처럼 가전제품 위주이기 때문에 품목이나 분위기면에서 차이가 많다. 전자랜드 건물에서는 거의 모든 물품을 팔지만 다양성은 적은 편으로, 완제품 PC나 가전제품, A/V(오디오/비디오) 위주로 판매하는 대형 매장이 많다. 지하층에는 전자부품(IC, 트랜지스터, 저항 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상점들이 대다수다.
5-4-2-2. 원효상가 (4~9동)
노래방기기나 전자악기류, 조명기기 등 사업자 위주의 물건을 취급하는 곳이 많다. 어붖가 아닌 이상은 용산을 몇년씩 들락거린 사람들이라도 이쪽에 가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듯하다. 노트북이나 컴퓨터 부품을 파는 곳도 있는데 그런 매장은 주로 인터넷 판매쪽에 주력한다. 용산에서 가장 오래된 상가다. 최근 스타트업 기업들이나 각종 단체에게 공간을 대여해주는 사업과 3D프린터, 목공 등의 체험이나 시설이용이 가능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5-4-2-3. 나진상가 (10~20동)
나진 10~15동까지는 보통 조명기구나 휴대전화 등을 취급하며 나머지 동은 1층에선 가전제품, 2~3층은 컴퓨터를 취급한다. 본래 과거에는 가장 흥했던 상가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전반에 콘솔도 팔았으나 상술한 이유로 2000년대 이후 반 이상은 폰팔이다. 2017년 사모펀트 IMM에 매각되었다. 이중계약 문제가 터져서 재개발 계획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11동(배터리 리필샵이 컴퓨터 부품점 사이에 끼어있음), 12동~13동 두꺼비상가(용산에 남아있는 사실상 마지막 게임 전문상가) 14동 전자월드(나진상가를 관리하는 나진산업의 본사 빌딩으로, 웨딩홀을 제외하면 일부 총판과 서비스센터, 그리고 다나와 용산지사가 위치함. 더불어서 과학동아의 천문대가 옥상에 위치함.) 15동(MSI서비스센터) 16동(농협용산전자지점) 19동~20동 사이에 벼룩시장이 있음. 이곳의 관리를 맡고 있는 나진산업이 게임단을 운영했다. (나진엠파이어)
5-4-2-4. 선인상가 (21, 22동)
상가 전체가 컴퓨터 전문에 가까운데 특성상 조립PC업체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컴덕후들은 용산에 오면 거의 여기에서 일을 해결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며, 특히 중고부품 및 완제품 등을 구매하려면 여기 아니면 힘들다고 봐야한다. 예전에는 1층에 주로 게임기 및 완제품, 업무용 기기업체들이 있었고 2층에 주로 컴퓨터 부품가게들이 있었는데 이후 게임기 및 완제품 시장이 몰락하면서 1층에는 주로 노트북, 수입업체, 조립PC업체들이 들어왔고 2층에는 그대로 부품가게와 조립업체들이 있다. 여담으로 건물 3개가 삼각형으로 붙어있는 미묘한 건물구조라 처음 오는 사람은 굉장히 헤매기 쉬운 곳이다. 예전에는 코엑스몰, 홍그와트와 함께 서울 3대 미궁으로 꼽힐 정도였다.
5-4-2-5. 한신전자타운
선인상가를 지나 나진상가쪽으로 들어가면 주택가 직전에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한신전자타운이다. 일단 가장 외진곳에 있는 데다가 접근성이 가장 떨어지는 관계로 임대료가 싼만큼 물건값도 싸다. 심지어 과거에는 다나와 최저가보다도 싸게 파는 곳이 있었을 정도다. 현재는 인터넷주문 때문에 가게가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가장 싼 물건은 대체로 한신에 있다. 문제는 지하철타고 왔으면 돌아갈 때 힘들다는 점? 대형 가게 컴퓨존이 여기 있었으나 2016년에 컴퓨존이 본점을 이전하였고 현재는 조이젠이 입점하였다.
5-4-2-6. 터미널상가(폐쇄)
터미널상가라는 이름은 이 건물이 사실 용산관광버스터미널이었기 때문이다. 용산시외버스터미널과는 다르며, 그곳은 1990년에 서울남부터미널로 이전했고 해당 부지에는 LG유플러스 용산사옥이 들어섰다. '용산관광버스터미널/터미널상가' 1층은 주차장이 되었음에도 철거 전까지 버스 터미널의 승강장 형태를 간직하고 있엇으며, 심지어는 용도변경 같은 걸 한 적이 없는 관계로 행정서류상으로 이 건물은 계속 터미널이었다. 2013년11월부로 영업을 정지했고 가게들은 타상가(선인, 전자랜드 등 인접상가나 종로 등)으로 이전했다. 터미널상가 부지에 호텔을 지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용산역에서 상가로 연결되는 구름다리"는 우회로가 설치되었고, 터미널 상가로 향하는 부분은 아예 끊어놓았다. 2014년8월 즈음엔 상가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으며, 용산역 방면 구름다리는 반절 정도만 존치되어 선인상가나 전자랜드로 가는 방향 중간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가설된 상태로 남아있다.
2013년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결정된 뒤 터미널 상가가 가장 먼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호텔이 세워졌다. 소유주는 서부T&D라는 회사인데, 터미널상가가 버스터미널이던 시절부터 소유주였던 곳이다. 이름은 용산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이 가칭이었고, 2017년 서울 드래곤 시티로 최종 명칭을 확정했다. 지상 39층 높이 150m, 1730실 규모로 아코르호텔 그룹의 4개 브랜드가 같이 있는 호텔 멀티플렉스로 되어있는 국내 최대 규모 호텔이다. 2017년10월1일에 개장했으며, 이제 용산전자상가의 시대도 끄나나고 있다. 그 와중에 용산역으로 가는 구름다리는 여전히 살아남아있다.
5-4-2-7. 아이피아 대주피오레 (23동)
19동 동쪽에 자리잡은 오피스텔로, 지하층에 몇며 총판이나 A/S센터가 입주해있다. 대중교통수단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면 돌아갈 길이 막막할 정도. 올땐 직선으로 쭉 왔는데 나올땐 15분정도 빙 돌아나와도 지하철역은 없고 버스정류장 하나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빨리 가려면 신용산역에서 지하차도를 통해 선인상가로 갔다가 선인상가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낫다. 엘시디존(이지가이드였던 곳)은 2층에, 아이코다는 지하1층과 3층에 있다. 4층에는 조립컴퓨터 업체 컴스클럽과 모니터제조수입사인 래안텍의 고객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 23이라는 숫자가 써져있지만 이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5-4-2-8. 아이파크몰/ 스페이스9/ 용산역
백화점에서도 대형 백색가전류를 취급한다. 대형가전에 집중하는 이유는 노트북이나 이어폰, 공유기 같은 제품들은 구름다리 조금만 걸어나가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카, 콘솔 게임계의 터미널상가로 위치가 위치이다보니 외국인의 밀도가 높고 호객행위도 가장 심하다. 여기 컴샵들은 진짜 조심하자! 그래도 위치가 좋으니까 굵직굵직한 매장들이 많다. 통신사 고객센터, 이마트, 건담베이스 아이파크몰점, 타미야용산점, 레프리카용산점 등이 있다. 용산 e-Sports 스타디움이 있어 스타리그, 프로리그, 롤챔스를 비롯한 온게임넷 주요 경기가 자주 열리는 것이 여타 용산 전자상가와의 차별점이었으나,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있는 서울 OGN e스타디움으로 이사를 가면서 용산 경기장은 폐쇄되고 일부는 풋살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9년 하반기 기준으로 전자제품 매장들이 다수 빠져나가 많이 쪼그라들었다. 최근들어 컨셉이 쇼핑몰에서 면세점으로 바뀌면서 그렇게 된 듯 하며, 이후 4층에 있던 매장들이 전부 3층의 빈자리로 옮겼다.
5-4-2-9. 용산~신용산 길목의 굴다리 밑
복제CD를 팔던 곳으로 유명했지만 인터넷 공유와 VOD 서비스가 워낙 대중화된 요즘은 거의 멸종해서 아무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지하통로가 되었다. 그 명맥은 선인21동으로 직결되는 복도쪽에서 간간이 유지하고 있지만 단속뜨면 이것마저 사라진다.
5-4-2-10. 철거 후 재개발과 결말
용산 전자상가는 외관에서 볼 수 있듯이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노후건물이라 30년 내구연한 일몰에 따라 2020년까지는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전자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터미널상가처럼 순차적으로 재개발 될 예정으로, 대부분 지구를 호텔이나 전시장(컨벤션센터) 등으로 재개발 할 예정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맞추려는건데,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부활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할 일이다. 2010년대 중반 들어 용산 전자상가에 신규로 입점하는 점포는 사실상 끊겼으며, 선인/나진/도깨비 등도 군데군데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용전에 있는 점포들도 하나 둘 이전을 준비 중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늦어도 2019년까지 용산을 한국의 롯폰기나 오다이바, 미국으로 치면 타임스퀘어 같은 초대형 업무/상업지구로 재개발하려는 청사진을 추진 중인데,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무산으로 일단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2016년 용산미군기지 반환에 따라 다시 용산 전역을 재갭라하는 계획이 시동이 붙을 것으로 보여 용산전자상가의 전면 철거는 늦어도 2020년까지 완료된다고 했지만... 지금 2021년6월14일임. 선인상가/나진상가/전자랜드 방면은 용산역 면세점과 연계한 전자제품 관광코스와 창업센터로 활용될 예정이다.
공영주차장 부지를 국토부는 용산전자상가 내 위치해있는 한강로3가 공영주차장에 행복주택을 지을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준공 계획이며 시행사는 sh공사로 약 1000세대가 입주하게 될 예정이었으나... 지금은 2021년6월14일. 아직이다.
나진상가의 경우, 사모펀드 IMM이 26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IMM은 용산역아이파크몰, 래미안용산더센트럴,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 아모레퍼시픽, LS그룹사옥건축 등 용산역 주변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따라 대규모 상업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대규모 유통센터로 재개발하겠다고 하였다. 나진상가의 경우 이미 2013년부터 서울특별시청의 정비구역 예고에 따라 신규 입점이 어려웠는데, 이번에 사모펀드 IMM의 나진상가 인수로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위에 앞서 이중계약문제로 언제 개발될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이후 2020년 서부T&D에게서 IMM 사모펀드가 지분 전부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이로써 이중계약 문제를 해소하는데 성공했고 본격적인 나진상가 철거후 재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IMM은 2021년 상반기까지 나진상가의 나머지 지분도 확보하고, 재개발을 위해 2021년 연말까지 입점 상가를 전부 내보내겠다는 입장이다.
5-5. 용산공원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 용산기지가 2017년 말까지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함에 따라 공터로 남는 이곳을 활용하기 위해 계획된 국가 공원이다. 용산민족공원이라고도 알려져있다. 처음에는 국무총리실에서 관할하였으나, 현재는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다. 용산 미군기지가 있던 곳은 대한민국 국유지로서 미국에 빌려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용산기지가 있던 자리를 243만 제곱미터 규모 공원으로 조성하고 각종 복합시설을 유치할 예정이다. 메인 포스트에는 주한미국대사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을 이전시키고 사우스 포스트에는 각종 박물관 및 문화시설을 유치시킨다는 계획이다. 1조2000억원을 투입해 2019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성해 나갈 예정이다.
용산구에서는 이를 용산지구단위계획과 연계하여 89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주변 지역까지 전부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미군부대부지를 전부 공원으로 조성할 경우 도보로 10분 이내 거리 지하철역만 해도 무려 9개나 되는 전무후무한 공원이 된다. (숙대입구, 남영, 삼각지, 용산, 신용산, 이촌, 서빙고, 녹사평, 이태원)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만성적인 주택난을 해소하고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아파트로 개발하자는 주장이 있으나, 용산 미군 부지의 역사적 가치와 도심 공원 부족 등의 이유로 수용하기 어렵다는게 정부 공식 입장이다.
본래 '용산공원'은 임시 명칭이며 명칭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이름으로 바꿀 예정이었으나, 공모전에서 1위를 한 명칭은 용산공원이다. 가칭을 그대로 집어넣었는데 공모전 1위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오면서 결국 대상 상품은 주지 않고 2등부터 지급하였다. ;; ㅎㅎ
5-5-1.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사업
국토부는 2011년11월27일부터 2012년4월16일까지 실시된 설계 국제공모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을 1등작으로 선정했다고 2012년4월23일 밝혔다. 1등작으로 선정된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은 세계적 조경가 아드리안 구즈(네덜란드)와 숭효상(한국) 건축가가 공동 설계한 작품이다.
연과 역사, 문화를 치유하는 공원으로서 산/골/연못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남산~용산공원~한강을 잇는 생태축을 구축하고, 공원 내부와 주변 도시를 연계한 다리(오작교)를 설치하도록 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원 이용과 경험 프로그램 등 미래지향적 아이디어도 담았다.
2016년4월27일 국토교통부는 '용산공원 개발 시설과 프로그램 선정안'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에 따르면 용산기지 내에 위치한 시설물 1,200여 동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80여 동을 재활용하여 국가기관이 개발한 콘텐츠 사업(총 8개)에 사용할 수 있게끔 한다. (미래창조과학부/국가보훈처/문화체육관광부/문화재청/경찰청/여성가족부/산림청/문화체육관광부)
그러나 부처 나눠먹기식 비판에 마주하자 2016년7월5일 국토교통부는 기존에 발표했던 8개 콘텐츠 사업에 대해 역사성에 맞게 재검토하겠다고 하였다. 악화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두 달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조성안을 확정 발표해야하는 2017년7월까지 앞서 발표한 시설 적합성을 검토한 뒤, 성격과 맞지 않으면 취소시키겠다고 하였다. 또한 서울시와 협의하고 국민과 소통하여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8월3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용산공원 조성사업은 성급하고 일방적으로 이뤄진 반쪽짜리 공원사업"이라며 서울시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용산공원을 만들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후 2016년11월28일 국토교통부는 기존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 나눠먹기 논란이 불거진지 4개월 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기존 건물을 재활용 및 개축하여 박물관 등을 지으려는 계획은 철회되고 용산 미군기지가 있는 곳은 반환되는대로 토지재생과정 등을 거쳐 생태공원으로 조성된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 80채만 남기고 전부 철거된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상태가 좋은 곳은 2018년까지 공원으로 조성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2027년까지 용산공원 전체에 대한 생태공원화를 마무리한다는 새 로드맵을 발표했다. 다만 2027년이라는 연도는 공원 완성의 개념이 아니고 기본적인 공원의 틀을 만듦으로써 추후 생태공원으로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용산공원 생태공원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이후 당정청을 망라한 "용산공원 조성 전략회의"를 비공개로 발족시켰다고 알려졌다. 특별법 개정을 고려한다고 한다. 그동안 박근혜정부와 박원순시장의 서울시 간 충돌이 주로 있었는데, 정권이 교체되면서 풀리게 된 것이다.
미군에 10% 내외 면적을 공여하려던 국방부와의 충돌은 공원 한가운데 잔류하기로 했던 한미연합사령부 본부를 이전하기로 하면서 해결될 것이다. 알박기로 여겨졌던 드래곤힐 호텔 역시 평택 이전 또는 폐쇄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 연계된 출입방호시설 부지도 반환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한국문학관이나 국토교통부의 국립박물관역 같은 움직임도 청와대 중재 아래 현재 멈춘 상태다.
2018년6월29일 경기도 평택시의 캠프 험프리스에서 신축된 사령부 청사 개관식을 열 예정이며, 2018년11월30일 용산미군기지 부지 내에서 처음으로 일반인의 방문이 허용된 '용산공원 갤러리'가 개관하였다. 주한미국대사관 숙소를 처음엔 용산공원 부지 안에 지으려고 했으나 부영 아세아아파트 부지로 이전을 확정지었다. 2020년7월 용산공원추진위원회는 미군 장교숙소 반환 기념행사에서 용산공원 내로 예정되어있던 경찰청 이전 계획을 용산국제업무지구로 변경하기로 함에 따라 용산공원 부지가 기존 계획에서 약 48만 제곱미터 정도 확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5월27일 국토부와 주한미국대사관과 부동산을 교환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이에 따라 용산공원 북쪽 주한미국대사관이 소유한 '캠프코이너' 기지 가운데 대사관 직원 숙소를 지으려던 땅 (3만236제곱미터)이 용산공원으로 흡수된다. 대신 국토교통부는 용산 철도고 옆에 들어서는 아세아 아파트 150가구를 기부채납 받아 주한미국대사관에 넘겨주기로 했다.
서울시내 한복판의 초대형 부지를 개발하는 중대하고 큰 문제이다보니 격론이 오가면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있다.
5-5-2. 용산공원 개발 모델
대도시 도심지에 대규모 평지 자연녹지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미국 뉴욕시 센트럴파크, 시카고의 그랜드 파크,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 독일 베를린의 티어가르텐, 뮌헨 영국식 정원, 이탈리아 로마 보르게세 공원, 밀라노 셈피오네 공원, 스페인 마드리드 카사데 캄포와 레티로 공원,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센티니얼 파크, 일본 도쿄도 신주쿠공원, 홍콩 빅토리아 공원, 대만 타이베이 2.28사건 평과 기념 공원 등 의외로 많다.
도심녹지가 부족한 서울이지만 서울숲, 북서울 꿈의숲, 올림픽공원 등 도심지 자연녹지공원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도심지 대형녹지공원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대형 녹지 공급으로 녹지 비율을 늘려야한다는 측과 경의선 숲길과 같이 도심 속 소형 녹지공원을 대량 공급해 녹지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측이 도시행정학계에서 대립 중이다.
5-5-3. 연계 개발
한남뉴타운/이태원로주변 지구단위계획안/ 삼각맨션부지 특별계획구역/ 한강로 도시환경정비구역/ 후암동 특별계획구역/ 신계구역 주택재개발사업/ 캠프킴부지 개발계획/ 문배업무지구 특별계획구역/ 용산역 전면 도시환경정비사업/ 국제빌딩주변 도시환경정비사업/ 용산공원 북측 일대 지구단위계획/ 신용산역 북측 도시환경정비구역/ 서빙고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 신분당선 신사~용산 연장
5-6. 해방촌
용산구에 위치한 행정구역상 용산동2가와 후암동 고지대 동네 일부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해방과 더불어 형성되었다하여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방직후 북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이 지역에 촌락을 이루게 되고, 이후 도시가 발전하며 이촌향도 한 이주민들이 다시 한번 대거 들어와 동네를 형성하게 된다. 이 동네는 어엿한 행정구역상 명칭이 따로 있지만, 아직도 '해방촌'과 '해방'이 들어간 상호들이 꽤 남아있는 지역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한 곳이라 한때는 서울시에서 이곳을 녹지화한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반발이 심해 무산된 바 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인근 이태원동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뜨는 동네가 되면서 인근의 해방촌에도 유동인구가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곳에 있던 외국인들을 위한 소규모 식당들이 맛집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상권이 점차 확대되었고, 현재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원주민들은 다른 동네로 밀려났으나, 다시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옆 동네 경리단길과 비슷하게 주말에는 힙스터와 맛집 애호가들로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입소문으로 인기를 얻은 동네가 으레 그렇듯 이 지역 주민들은 인기 맛집보다는 저렴한 동네 가게를 들리는 경우가 많다.
해방촌 녹사평역 방향 입구부터 언덕길 바로 전까지 길게 뻗어있는 '신흥로'에는 블로그나 방송에서 홍보된 중간가격대 이상의 캐쥬얼한 식당 또는 카페가 많다. 관광객 기준으로는 적당한 가격대 (1인당 1~3만원)에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는 식당들이지만, 햄버거 하나에 콜라 하나 시켜도 만원이 넘어가니 일반적인 한국 물가보다는 아주 높다. 반면 해방촌오거리에서 보성여고까지의 '소월로20길'이 주로 지역주민들이 찾는 지역으로 카페와 디저트 가게가 들어서고 있는 신훙시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오래된 가게들이다.
근처 동네인 이태원동이나 보광동만큼은 아니지만 이 지역에도 외국인들이 제법 산다. 가게에서 일하는 외국인이나 한국말 유창한 이국 용모의 아이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그 외 동네 바로 위쪽으로 소월로가 통과하고 길을 건너면 남산인지라 소월로 인근에서는 관광객들도 자주 눈에 띄며 평일 저녁 또는 주말에는 자전거족도 합세하는 편이다.
고지대에 있고 근처에 높은 건물이 드물어 전망이 좋은 편이다. 굳이 남산에 오르지 않아도 곳곳에서 멀리까지 보인다. 일몰 시기에 소월로 인근에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남산자락에 위치하여 까마귀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전봇대 위에 앉아있는 것을 가끔씩 볼 수 있다.
신훙로 주변의 인기가 무색하게 낙후지역으로 분류되어 용산구청에서 재생사업을 꾸준히 벌이는 곳이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반지하 방 같은 곳에서 아직도 가내수공업을 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구석으로 들어가다 보면 판잣집, 텃밭도 있고, 해방촌 108계단이라고 불리는 가파른 계단 길에는 2018년 푸니쿨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5-6-1. 예술거리의 탄생
해방촌은 이태원동과 경리단길의 상권이 점점 커지며 높아진 임대료에 지친 상인들이 해방촌 신흥로 일대로 모이며 활발한 분위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용산구에서 해방촌을 상대로 벽화 문화사업을 진행했고, 지난해 해방촌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축제 '해방촌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가 열리면서 '예술마을'이란 별칭도 얻었다.
해방촌 오거리 일대로 상권이 확대된 것은 젊은층 사이에서 루프탑 식당이나 카페, 바 등이 유행하면서부터다. 해방촌 오거리 주변에서는 루프탑 가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루프탑은 건물 맨 위층 야외에서 식사와 음료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도심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해방촌 오거리 일대는 언덕 지형이라 서울 시내 조망이 뛰어나다. 그래서 경리단길이나 본래 이태원동 부근에 있던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 상점, 서점 등이 이국적인 해방촌으로 모이기 시작하며 예술가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동네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해방촌은 기존 이태원과 경리단길의 대체 장소로 주목받고 있지만, 점점 시세가 폭등하는 수준이고 그마저도 매물이 없어서 못 살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따. 용산미군기지가 철수하고 용산공원을 조성한다는 발표도 투기붐에 한몫했다. 상권도 별로 없는 주택가 언덕지형임에도 2020년 기준 어지간한 소형 단독주택이 20억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구경 온 사람들에 대한 거주민의 불만이 늘고있다. 해방촌은 기본적으로 주택가를 기반으로 길이 뻗어 있기 때문에 초행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무조건 주택가를 지나기 마련인데, 소음과 쓰레기 무단투기 등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술집으로 인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골목이 많은 주택가의 구조상 소리가 잘 울리고 특히 거주민의 나이대가 높아서 소음에 예민한 경우가 많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광객이 외지에서 온 유명 가게들만 찾아가고 기존의 골목 상권에 이바지하는 바가 적기에 실거주민은 이런 행태에 피해만 보고 남는게 없는 상황이다.
5-6-2. 교통
동네의 중심인 오거리에서 해방촌 내부로 들어가는 2가지의 길을 제외하고 3가지의 큰 길을 살펴보면 각각 남산 방향, 숙대입구역 방향, 녹사평역 방향이다. 우선 ①남산방향으로 올라가보면 엄청난 경사진 길을 올라가서 우회전한 다음 남산순환도로를 달리면서 하얏트 호텔을 지나 삼거리에서 유천 후 5분만 가면 한남대교가 나온다. 길이 안막히는 날이면 15분 만에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반대쪽으로 가면 남산도서관과 서울역이 나온다. ②숙대입구역 방향은 신흥로를 따라 쭉 내려가고, 회전교차로에서 좌회전해서 두텁바위로를 따라 직진하면 위에 서술한 숙대입구역이 나오는데, 오거리에서 내려갈 때 신흥로가 차량이 딱 두 대만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매우 좁다. 그런데도 지름길임을 아는 외지인들과 지역주민들의 차량이 뒤섞여 엄청난 통행량을 보유하고 있다. 주차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이라 트랜디한 식당과 바가 밀집한 평지 구간에서는 보도 위에 불법 주차한 차량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③녹사평역 방향은 신흥로를 따라 내려가게 되는데, 평지 구간부터는 위에 있는 해방촌과는 대조되게 화려한 가게나 외국인들도 많다. 평지 구간을 쭉 직진하면 미군 부대가 나오면서 녹사평역이 보인다. 여기서 지하차도로 들어가 7분정도 가면 바로 반포대교가 나온다. 버스를 타고 녹사평대로를 달려 해방촌에 놀러온다면 '해방촌'보다는 '용산한신아파트' 정류소에서 내리는게 중심부에서 더 가깝다.
5-6-3. 명소
-한신옹기: 녹사평대로에서 진입할 때 해방촌 초입에 위치한 오래된 옹기 가게. 해방촌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보성여중고교: 멀리서 봤을 때 언덕 위에 위치한 하늘색 건물, 1950년대부터 있었으니 서울시에서는 제법 오래된 학교에 속한다.
-해방교회: 해방촌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로, 한남동의 한광교회처럼 달동네의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있다.
-해방촌오거리: 해방촌 교통의 중심이며, 택시를 탈 때 여기로 가자고 하면 대부분 알아듣는다.
-소월로: 해방촌 위에서 남산주위를 도는 도로다. 나름 지름길이라 엄청나게 정체되다가도 낮에는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기도 하는 편이다. 가끔 고급 스포츠카로 시속 100km 넘게 과속을 하는 이들도 있다. 걷다 보면 멋진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는 지점이 몇군데 있다.
-108계단 경사형 승강기: 경사형 엘리베이터인데 주택가 한복판에 있는게 특징이다. 전술한대로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의 계단이 그대로 남아 골목길이 된 것으로, 인근에 인기있는 가게 같은게 없어서 주로 지역주민들이 이용한다.
-육교: 녹사평대로 건너편 이태원동과의 사이에 있는 육교들은 숨겨진 사진촬영 명소다. 언덕지형인 해방촌, 이태원 외에도 남산의 전경이 잘 보이는 위치가 있기 때문이다.
5-7. 영화관
영화관은 CGV 용산아이파크몰과 롯데시네마 용산밖에 없다. 영화관이 부족해보이지만 CGV 용산아이파크몰이 CGV의 플래그십 스토어라서 용산구 아니 대한민국 전국의 영화 수요를 한 방에 하드캐리하고 있다. 특히 용산 아이맥스는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용산의 랜드마크 수준일 정도다. CGV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전자랜드 건물에 자리한 롯데시네마는 눈물을 머금고 용산구와 마포구 공덕동, 도화동 일대의 음식점 및 점포에 7천원 영화할인 쿠폰을 열심히 뿌리고 있다.
5-8. 호텔
그랜드하얏트서울/노보텔스위트앰배서더서울용산/그랜드머큐어앰배서더서울용산/포포인츠바이쉐라톤서울남산/캐피탈호텔(용산미군부대가 평택으로 이주하기 전에 미군장교들이 자주 찾았던 곳)/이태원해밀톤호텔(수영장유명)/몬드리안이태원호텔/드래곤힐랏지(미군전용)
6. 교육
강북권 내에서도 장난 아니게 교육열이 세고 학생들을 학원에 뺑뺑이 돌리는 동네가 여러군데 있다. 중학교는 용강중학교가 유명하고, 고등학교는 배문고와 용산고가 유명하며, 이들 학교의 시험 난이도 또한 높은 편이다. 용산기지 내부에 미군 장병 자녀를 위한 서울미국인학교(초,중,고)가 운영되었으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함에 따라 폐교되었다.
7. 정비사업
서울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미군 부대 등 여러 이유로 개발이 되지 않은 탓에 오래 전부터 재개발 떡밥이 계속 돌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몇몇 지역은 매우 낙후되었는데도, 지가는 강남 뺨치게 높은 경우도 있다. 자타공인 부동산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향후 모습이 기대되는 지역 1순위다.
용산국제업무지구를 계기로 본격적인 개발이 되나 싶었으나 실패했다. 한남뉴타운과 같은 대규모 개발도 예정되어 있지만 몇 년째 질질 끌고 있다. 경부선 전철 지하화 문제도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떡밥 중 하나다. 최근에는 용산역 주변으로 대규모 주상복합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용산 푸르지오 써밋, 래미안용산더센트럴,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 등.
용산구가 용산공원으로 조성하려는 용산미군기지 부지 및 인근 지역은 895제곱미터에 달한다.
7-1. 용산기지 이전 (용산공원)
옛날 용산은 한강변에 있어서 상습 홍수 지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장점 덕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고 여기에 왜군이 주둔했었다가 명나라군에 의해 대패배를 당해 결국 본토로 도망친 바가 있었고, 명나라군도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전쟁에서 대승리하고 본국으로 귀환해 한동안 공터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진압하러 온 청나라군도 여기에 주둔했었고,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군이 본국으로 귀환하고 여기에 일본군이 대신 들어오자 1904년 옛 둔지미 마을 터에 일본군 조선주차군 사령부가 설치되었으며(일제 시대 때 명동과 더불어 양대 일본인 주거지역), 마지막으로 일본이 미국과 중국에게 무조건 항복하자 일본군이 쫓겨나고 이 자리인 용산기지에 주한미군이 들어서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용산기지는 서울 지하철 3호선과 서울 지하철 4호선을 비껴가게 만듦과 더불어 동작대로가 북쪽으로 뻗지 못하게 한 주범이다. 숭례문-용산고등학교 사이 후암로(당시 후암동길)와 이어져 서울의 축을 맡을 예정이었던 동작대로는 망하고 한강대로가 약간 꺾여져 나가게 되었지만 축으로서 구실은 실패하였다. 다만 미군 기지가 이전해도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동편에 용산가족공원이 있는 것이 문제다.
2021년 기준으로 한미연합군사령부 등 필수시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미군 시설이 이전하여 대부분은 현재 공터로 남아있느 상태다. 다만 아직 미군 영역으로 유지되어 민간 양도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캠프 킴과 같은 일부 시설은 이미 민간에 개방되거나 건설업체가 들어서서 공사에 착수하였다.
다만 미국대사관 예정부지와 미군 헬기장, 미군 전용 호텔인 드래곤 힐 릿지는 잔류할 전망이다. 용산구 드래곤 힐 랏지도 이전할 것을 희망(철거보다는 용도변경 고려)하고 있으며, 미군 잔류 시설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한미군측과 계속 협상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용산철도기지대지 재활용 등 각지에서 재개발 사업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너무 많아서 늘어놓기도 힘들정도다. 한마디로 용산 전 지역이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8. 교통
KTX 시발역이자 수도권전철1호선과 경의중앙선이 교차하고 근처로 서울지하철4호선이 지나는 용산역이 있으며, 서울지하철6호선이 구 중앙을 관통하지만 1호선과 6호선 환승이 안된다는 문제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교통 편리 지역은 한남동이다. 비록 광역철도는 경의중앙선만 지나가지만, 한남대교가 있어서 강남권으로 가는 시내버스, 분당 등으로 가는 광역버스가 모두 한남고가차로 북단에서 정차한다.
9. 하위 행정구역
9-1. 후암동
용산고, 독일문화원, 남산도서관, 용산도서관, 삼광초, 후암초가 있으며, 노후된 주거지구이다. 최근에는 이 일대를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브라운스톤아파트 근처에 후암시장이 있다. 후암초등학교 근처의 두텁바위로에서 남산도서관이 있는 소월로로 가려면 37.5도나 되는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엘레베이터를 갖춘 전망대가 생기면서 이용자의 불편이 줄어들었다.
서울역이 인근에 있고, 후암동길이 동의 남북으로 지나며, 남산순환로인 소월길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지난다. 소월길은 시인 김소월의 호를 따서 1984년 제정한 길이름이다. 소월길 북쪽에는 시립남산도서관과 남산식물원이 있으며, 도서관 앞에는 다산 정약용과 퇴계 이황의 동상이 있다. 남산도서관 남쪽에는 용산도서관, 그 동쪽에는 후암초등학교와 독일문화원이 있다. 후암동길 서쪽에는 남산 브라운스톤아파트 ((구)병무청, 서울지방병무청)가 있는데, 옛날에는 그 자리에 국방부가 있었다.
9-2. 용산2가동
용산동2가와 용산동4가를 관할한다. 용산동4가는 전체가 미군기지여서 별거 없고, 용산동2가는 일명 해방촌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범위는 남쪽의 한신아파트에서 북동쪽으로 용암초, 북서쪽으로 용산고까지가 해당한다. 가는 방법에는 녹사평역2번출구에서 녹사펴애로를 따라가다가 한신아파트 앞에서 신훙로를 따라 올라가거나, 용산중학교(후암동종점 정류장)에서 신흥로36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108계단을 올라가면 해방촌이 나온다. 해방촌 내부에는 보성여중, 보성여고, 외국인학교인 센테니얼 크리스천 스쿨이 있다. 해방촌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군 부지와 남산이 차지하고 있다. 녹사평역과 N서울타워도 행정구역상 이곳 소속이다.
9-3. 남영동
서울역에서 남영역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라인의 동쪽이 해당된다. 행정구역상 용산구에 속하는 민자역사, 경의선, 인천공항철도, 4호선 서울역이 남영동 소속이다. 경찰청 인권센터 (구 남영동 대공분실)가 남영역 옆에 있다. 동의 남동부는 대부분 미군 부지이며, 전쟁기념관의 동의 남쪽 끝에 있다. 숙대입구역도 주요한 역이다. 남영동 관할 법정동 중 동자동에는 서울 5대 쪽방촌 중 하나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쪽방촌 주변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들이 몇 곳 들어서 있다. 또한 동자동 쪽방촌을 중심으로 인접 갈월동, 후암동에도 쪽방이 몇 곳 분포해 있다.
9-4. 청파동
서부역에서 남영역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라인의 서쪽이 해당된다. 참고로 청파동3가 서쪽에 뜬금없이 효창동 월경지가 있다. 지번으로는 효창동 1번지와 2번지다. 배문중, 배문고, 청파초, 신광초, 신광여중, 신광여고, 선린중, 선린인터넷고, 만리시장, 국립극단, 숙명여대, 천주교서울대교구 청파동성당, 삼일교회, 통일교 본부가 있다. 이 외에는 중소규모의 봉제 산업이 발달해서 거주지에서 옷감 짜는 공장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서계동과 숙명여대 주변은 재개발 요구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몇년 째 그대로인 상태다. 주목할만한 랜드마크로는 수십년 넘는 건물을 그대로 쓰는 개미슈퍼와 만리시장 고개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성우이용원이 있다. 성우이용원은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유서 깊은 이발소로, 2013년 서율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2019년에 재단장하여 옛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옛 신광여중고교에는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연합군 포로 가두는 경성 연합군포로수용소로 썼다.
9-5. 원효로1동
오리온그룹 본사, 용산구보건분소, 용산경찰서, 남정초, 천주교 당고개순교성지(용산E편한세상 옆)이 있다. 용산구 유일의 등기소가 이곳에 있다. 현 녹사평역 근처, 이태원동으로 구청을 옮기기 전까지 현재의 용산 꿈나무 종합타운 건물에 용산구청이 자리잡고 있다.
9-6. 원효로2동
서울원효초, 성심여중, 성심여고, 천주교서울대교구 용산성당이 현재 있으며, 국립전파연구원이 있었다. 원효대교 북단을 통해 여의도로 이동할 수 있다. 원효로4가와 청암동의 경우 구 경계상 마포구 염리동, 도화동과 생활권이 접해있어서 사실상 마포구 생활권으로 취급받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용산역보다 마포역, 공덕역이 더 가까우며, 먹자골목도 마포 쪽이 더 가깝다.
9-7. 효창동
효창공원앞역의 북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금양초, 서울자동차고, 효창공원, 효창운동장, 백범김구기념관이 있다.
9-8. 용문동
효창공원앞역의 남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용문시장이 있다. 경의선이 지하화되며 경의선 숲길이 조성되었다.
9-9. 한강로동
용산역, 용산 전자상가, 용사의 집, 용산소방서, 용산우체국, 용산세무서, LS타워가 있다. 용산역 근처에서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용산차량기지 부지도 이곳에 있다. 동쪽은 미군 부지이며 동 전반에 고층 아파트가 점차 들어서고 있다. 통일교 본부교회인 천복궁도 이곳에 있다. 대원방송국도 이곳에 있다. 학교로는 용산초, 한강초, 용산공고가 있다.
9-10. 이촌동
한강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한강대교 북단을 중심으로 동쪽은 통상 동부이촌동인 이촌1동으로, 서쪽은 서부이촌동이라 할 수 있는 이촌2으로 행정동이 나뉘어져 있다.
9-10-1. 이촌1동 (속칭 동부이촌동)
이른바 동부이촌동으로 잘 알려진 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통상 한강대교 북단 동쪽부터 동작대교 북단 서쪽까지라고 할 수 있다. 서쪽으로는 한강대로, 동쪽으로는 동작대교,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경원선(및 나아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으로 상당히 명확하게 동네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한강대교를 건너가면 노들섬이 나온다. 용산구 자체가 넓게 볼 때 범도심권이면서 강북지역에서 남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서 한강과 접하는 부분이 넓은데, 동부이촌동은 이 용산구의 수변지역에서도 한가운데라는 점과 당장 남산 뒤 도심이 있고 차로 10분 거리인 여의도가 가까우며 한강 건너면 바로 강남권인지라 서울특별시에서는 중심가로 손꼽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계로 외부로 나가는 도로 교통은 매우 좋다. 바로 앞에 강변북로가 있고, 강남방면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철도교통 또한 용산역이 바로 옆이고 북부에 서울 도심과 서울역, 강북구, 사당역, 안양시, 안산시로 이동이 가능한 수도권전철4호선과 경기도 서북부 도시들과 마포구, 왕십리역, 경기도 동부도시들로 이동이 가능한 수도권전철 경의중앙선의 환승역인 이촌역이 있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다만 동네가 외부와의 지형지물이 확실하고, 용산역/이태원 등 대중 흡입력을 가진 큰 교통거점 및 상업시설과는 가까우면서도 적절하게 떨어져있는 점이 작용하여 동네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거주민 평균 연령은 다소 높은 편으로, 주로 전직 정재계인사들이나 중견급 연예인들 그리고 은퇴한 노년층들이 많이 산다. 이러한 동네 특성상 1990년대부터 강남3구와 함께 늘 보수 정당 득표율 최상위권을 차지한 동네이지만 의외로 1980년대까지는 젊은 고소득층의 영향으로 오히려 신민당 같은 당시의 야당 득표율이 기존의 여당 득표율보다 높았다. (특히 이곳의 경우 아파트 위주의 주거 여건으로 구성돼있어 성북동/한남동/연희동과 달리 빈부 격차도 적은만큼 보수정당지지율이 이쪽에 비해서도 눈에 띄게 높은 편이다.) 용산구가 강북에서 거의 유일하게 보수 정당 텃밭이라고 불렸던 이유가 바로 동부이촌동/서빙고동/한남동 같은 부촌에서 보수 정당 표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도 무턱대고 보수 정당에만 표를 주지는 않는다는 점~)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엄청나게 큰 백사장이 있던 곳이었다. 여름철에는 시민들이 물놀이를 하던 곳이었으며, 선거철에는 대규모 유세가 가능할 정도로 넓었으나 1960년대 이후 서울 지역 각지에 대규모 개발을 하면서 이 백사장을 메우고 공무원 아파트 및 외국인 아파트와 한강맨션 아파트 등을 지어 이 지역을 고급주택 단지로 변모시켰다. 당시 마포아파트 다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대규모 아파트가 가장 먼저 생긴 지역 중 하나로, 1970년 초반부터는 민간 건설사들도 개발에 참여하여 10층짜리 고층아파트도 지어진 바 있다. (한강으로 시작되는 맨션 시리즈를 지은 삼익주택이 이 실적을 바탕으로 남천 삼익비치라는 부촌도 건설하게 된다.) 단독주택없이 100% 공동주택만 있으며 아파트가 전혀 보편화되지 않은 1960년대 말부터 여의도, 반포동, 압구정동과 함께 아파트로만 집중 개발된 대한민국의 첫번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콘크리트 투성이 아파트 위주 신도시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개발 당시 중산층과 상류층 이상 주민들을 타겟으로 잡아서인지 드문드문 90~100평대 아파트도 찾아보면 있을 정도로 넓은 평수의 아파트 비중이 높다. 2010년대 지금 시기에도 90~100평 아파트들의 비중이 높은 동네는 거의 없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게다가 단지 안에는 법적으로 수영장과 정구장도 마련하라고하여 웬만한 아파트 단지에는 수입상가와 레저시설까지 들어가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새로 지어진 맨션이라는 고급아파트에 사는 계층을 일컬어 맨션족이라 불렀다. 신흥 부자들이 많이 살아 도둑이나 강도가 많이 출몰한다고하여 도둑촌이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도둑촌은 동부이촌동 뿐 아니라 이태원/한남동 같은 외국인이나 부자들이 많이 사는 용산의 다른 지역도 포함하는 말)
또 동네 형성 초기부터 일본인들이 주로 이주해와서 국내 일본인 최대 거주지로 알려져있는데, 일본인들만 많이 사는 건 아니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아무래도 바로 뒤에 용산 미군기지가 있어서 그런 것으로 보이며, 때문에 아침 시간대엔 통근하는 미군들과 국제학교의 스쿨버스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의 한강자이아파트가 원래 외국인아파트 단지였는데, 2013년 행안부 통계에 의하면 천명이 넘는 일본인이 거주 중이다.)
동부이촌동 중심을 가로로 관통하는 도로인 이촌로 뒷쪽에는 제일 먼저 존재한 공무원 아파트 등이 있었는데 1990년대에 그것들을 재건축한 고층 아파트들이 자리하며 대체로 30~40대 등 젊은 층들이 사는 편이다. 이촌로 앞쪽에는 아직 재건축하지 않은 아파트들이 주로 분포한다. 동네가 크지 않은 특성상 대단지 아파트보다는 주로 한두동짜리 나홀로 아파트들이 존재하며, 이 아파트들의 경우 지어진지 40년이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거환경도 괜찮은데다 한강이 옆이고 내부 평수도 넓은 편이라 초창기에 이주해와서 지금까지 거주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강맨션아파트
1970년에 지어진 후 아직까지도 잘 있다. 화장실도 2개에, 50평대 아파트도 있어서인지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호화아파트였던 셈이다. 평수가 워낙 넓은데다 애초부터 상류층 이상급들만입주할 수 있게끔 설계하여 무너질 염려없이 튼튼하게 잘 버티고 있다. 재산 많은 어르신들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주거환경에도 만족하고 있어 재건축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결국 재건축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가동과의 마찰이 있었고, 결국 상가동과는 분리하여 재건축을 진행한다.*
다만 외인아파트를 재건축한 LG한강자이 아파트와 2015년에는 구 렉스아파트를 재건축한 56층의 초고층 아파트인 래미안첼리투스가 들어섰다. 이 아파트들은 40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들에 비하면 지어진지 얼마 안된 아파트들인지라 매우 비싼 편이다. 행정구역상 서빙고동이지만 동작대교 기준 동쪽에도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인 온누리교회와 서빙고 신동아파트라는 고가 아파트 단지가 자리한다. 수도권전철4호선으로 인해 동네가 단절되어 있지만 지하차도 한번 건너면 되는지라 사실상 같은 동부이촌동 생활권으로 인정하고 있따.
이촌로를 중심으로 도로 주변에 카페, 베이커리, 미용실, 은행, 병원 등 여타 동네와 다를 거 없는 각종 상가와 편의시설이 있다. (1970년대 당시 동네를 설계할 때는 상가를 아케이드 형식으로 점포들이 병렬되어 설계되었다고 함. 이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반포동 주공아파트나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안에도 그러함.) 특이한 점이라면 일본인 거주자가 많아 일어로 안내판이 써진 매장도 볼 수 있으며 특히 일본풍의 식당이나 선술집이나 크고 작은 일식집들이 꽤 많이 분포하며 입소문을 타 맛집이 된 곳이 많다. 병원, 약국의 경우 영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가 통하거나 의사가 외국에서 자격을 취득하고 와 외국어로 된 진단서류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으며, 심지어 일본인 약사가 있는 약국도 있다.
생활 물가의 경우 동네가 동네인지가 대체로 비싸다. 한강시민공원인 이촌 한강공원이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LG한강자이 아파트 사이에 있는 통로로 내려가면 있으며,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할 때도 여기서 많이 한다. 아산병원 계여린 금강아산병원도 있다. 땅값이 비싸서 그런지 프랜차이즈 매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웬만한 사립초보다 괜찮은 신용산초, 용강중, 중경고가 주요 학군이다. 어릴 때부터 동부이촌동 살면 대체로 신용산초-용강중 테크를 탄다. 고등학교의 경우 중경고 이외에도 용산고나 오산고를 나오는 케이스도 많다. 사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용강중을 나왔다면 평가가 별로 좋지 않은 중경고를 기피하는 경향(중경고의 경우 동네의 학령인구 자체가 적어서 타 지역에서도 배정을 받아 올 정도로 학군 범위가 넓음. 그렇다보니 학군 범위가 넓은 것이 이촌동 주민의 기피 등 악순환으로 스노우볼을 만든 것에 기인함.) 이 있어서 어떻게든 용산고나 타 지역의 자사고 진학을 선호하는 편이다. 사교육의 경우 역시 거주 연령이 높은 관계로 학생들을 위한 교육시설이 그리 많지 않고 학원이 많이 분포된 동네는 아니다. 학원 통학을 위해서는 압구정동, 구반포, 심지어 목동이나 대치동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9-10-2. 이촌2동 (서부이촌동)
동부이촌동과는 한강대로를 사이에 두고 분단되어 있다. 동부이촌동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위주의 주거 지역이다. 올림픽대로나 한강철교를 건너다보면 한강변에 병풍같이 늘어선 아파트들을 볼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이촌2동이다. 1990년대 말부터 순차적으로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하던 동부이촌동에 비해 재건축이 활발하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노후화된 아파트가 많은 편이다. 가격 역시 싼 편이었으나, 1990년대 말부터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로 지정되어 아파트값이 크게 뛰었다. 문제는 정작 가격이 치솟으니 오히려 개별 아파트 단지별로 재건축은 엄두도 못내고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로 일괄 재개발만 기다리게 되었으나, 사업이 완전히 무산되면서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망할 뻔 했으나 2020년5월 용산정비창대규모개발이 확정되면서 전망이 매우 좋아지고 있다. 또한 이촌1동보다는 못하지만 동네가 동네인지라 보수 정당 득표율이 높은 편이다.
9-11. 이태원동
용산구의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외국인, 외국 상품, 외국 문화의 집결지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1937년 이전까지 이태원 언덕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가 위치해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있었던 이태원이라는 옛 역원(조선시대 사신이나 관리의 마필을 공급하고 일반 길손이 머물던 공영숙소)의 명칭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대개 역원은 교통의 요지에 설치되는데,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많이 지나다보니 역원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 이름도 원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일이 관례처럼 되어왔다. 국내에 끝 글자가 '원(院)'으로 끝나는 세글자 지명(OO원)은 대부분 옛 역원이 있던 마을인데, 장호원/조치원/인덕원/사리원 등이 이태원과 비슷한 작명 원리로 지어진 지명들이다. 용산구청에서 이태원을 소개할 때는 이 설을 따르고 있다.
또 다른 설로는 당시 이타인이라고 불리던 일본인 전용 거주지가 조성되었던 곳으로, 그 이름에서 마을의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늘날 역원이었던 이태원의 터는 용산고 정문 앞에 있으며, 배나무가 많아서 이태원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 민간설화로는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강간을 당해 아기를 낳은 비구니들이 모여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인의 아이를 가졌다는 뜻에서 이태원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이것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태원이라는 명칭이 이미 쓰였기 때문에 딱히 근거 없는 어원이다.
이태원은 서울시 관광특구 1호로, 1997년 서울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후 명동, 동대문 등이 뒤를 이었다. 외국어에 능통한 관광경찰이 배치된 곳이다. 프랑스인의 서래마을이나 차이나타운처럼 국적에 따라서 특화된 외국인 공간은 있지만 세계 각지의 다양한 외국 문화가 집한된 곳은 서울에서 이태원 하나 뿐이다. 주말이면 다른 국적,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함께 탄다.
다만 2000대까진 외국인들이 밀집해있고 성소수자들이 노는 곳으로 유명해서 관광지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외국인 마을로 인식되었다. (사실 당시 진정한 외국인 마을은 한남동 유엔빌리지와 이촌동 용산 사우스포스트로, 일반 한국인의 출입이 제한된 지역이었음.) 클럽 등 놀거리는 제법 있었으나, 내국인들이 선뜻 놀러간다고 말하는 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연예인이 운영하는 맛집 및 경리단길 등이 언론을 타면서 수요가 폭발하여 이제는 강남역, 홍대거리 같은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다만 면적의 한계가 있는 만큼 다른 번화가 대비 메인상권의 규모가 큰 곳은 아니다. (해밀턴 호텔 뒷길이 메인스트리트)
2007년 송도영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는 "예전의 이태원이 해외로 나가는 문이었다면, 요즘의 이태원은 해외 경험을 재확인하는 공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해외여행에서 맛본 타국의 음식을 고향에서 맛보는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이라고 한다. 인생 자체가 여행인 시대가 되었기에 투어리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한국인이 늘고 잇으며, 이태원에서는 한국인이 주인이 아닌데 그것을 즐기며 이렇게 이태원은 소비된다고 분석했다.
미군 기지가 평태긍로 떠난 이후 이태원 상권이 침체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꾸준히 돌았지만, 관광객이 늘어난 덕분인지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주변 시세가 올라간 적도 있었다. 다만 젠트리피케이션 여파가 장기화되며 골목 업소들이 폐업해 공실률이 높아진 와중에 2020년 코로나19 여파에 이 지역 클럽 집단감염까지 겹쳐 실제 잠정휴업하는 업소들이 즐비해지면서 정말로 상권이 제대로 망할 정도로 공실률이 증가하고 상권이 텅텅 빌 정도로 대위기를 맞았다. (이태원역이 개통 이래 처음으로 연평균 승객 2만명 선이 깨졌고, 이 지역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방송인 홍석천이 상가들을 전부 폐업했을 정도다)
많은 국가의 대사관들이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경리단길 주변으로는 알제리/필리핀/에티오피아/케냐 등 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 쪽의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있다. 근처에 외국인 학교도 있다. 이태원의 랜드마크로도 유명한 해밀턴 호텔이 있다. 해밀턴 호텔은 특2급 호텔로 다른 유명한 특급 호텔에 비하면 약간 낮지만, 주위에 유명한 식당이 많고 호텔 야외 수영장이 물놀이 장소로 유명하다.
용산구청이 이태원동에 있다. 원래는 원효로1가 효창공원역 부근에 구청이 있었으나 2010년 이태원동에 새 청사를 지어 이사를 왔다. 이태원 거리에서는 다소 떨어져있고 녹사평역 사거리 인근에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1동에 보광초, 2동에 이태원초와 서울디지텍고등학교가 있다.
서울지하철6호선 이태원역이 있으며, 이태원역 1,2번 출구 쪽으로 식음료상권(세계음식거리)이 형성되어 있고, 3번출구 아랫길로 우사단로, 4번출구 아래로 퀴논길이 있다. 3,4번 출구 사이길로 쭉 내려오다보면 엔틱가구거리가 있다. 또한 녹사평역과의 거리가 가까워 녹사평여긍로도 위의 거리를 도보권으로 이동할 수 있다.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구 미군기지 쪽을 따라 남산방향으로 쭉 올라가면 해방촌, 건너편으로 경리단길이 있다. 한강진역도 녹사평역만큼은 아니지만 도보로 갈 수 있을만큼 가까이에 있다. 한강진역 근처에는 서울용산국제학교와 블루스퀘어, 수입차 전시판매장들이 위치해있다.
이른바 서울의 3대 클럽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태원 번화가 주변은 주말 저녁이면 굉장히 시끄럽고 번잡해진다. 유흥가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재밌지만 클럽문화가 발달한 덕에 취객이나 난봉꾼들도 많으니 주의해야한다. 실제 오래되긴 했지만 여러 의문점 등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1997년 이태원 살인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엔 주한미군도 제법 보였고 때문에 미군 헌병대도 돌아다녔지만, 주한미군 기지가 용산구에서 평택시로 이전함에 따라 현재는 이태원에서 미군들을 보기가 꽤 힘들어졌다. 대신 한국에 거주하는 원어민 강사들이나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덕분에 서울 번화가 중에서는 미군이 빠진 후에도 명동 등과 함께 외국인이 가장 많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명동이 쇼핑 관광객 위주라면 이태원은 실거주 외국인이나 음주가무 목적이 비교적 강한편이다.
덧붙여 가상의 세계에서나 회자되는, 길을 걸을 때 이성(주로 남성)이 휘파람을 불면서 캣 콜링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매우 드문 장소이기도 하다. 이 문제로 같이 길을 걷던 남친 혹은 일행과 캣콜을 한 외국인의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심지어 간이라도 부었는지 커플에게도 캣콜링을 시도하는 사람도 잇는데,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에게 대놓고 캣콜링을 시도하다가 마침 상황을 목격한 남자친구가 정중히 자제를 부탁하였으나 도리어 남자친구의 멱살을 잡은 외국인도 있었다.
이태원역과 해밀턴 호텔을 기준으로 동네의 빈부격차가 있는 편이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서민 주택과 재래시장이 주로 있는 반면, 동쪽과 북쪽에는 운동장만 한 대형 최고급 저택이 즐비한 국내 최고 부촌 지역 중 하나다. 2016년8월 기준 한국에서 주식자산이 1조원 이상인 주식부자는 모두 24명이 있는데, 이 가운데 58%인 14명이 이태원동과 한남동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상위 3위는 모두 이태원동에 거주하고 있다.
이태원로 남쪽은 북쪽에 비해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그래도 비싼편이고 '한남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어 재개발투자 1순위로 꼽히면서 가격이 더욱 상승한 곳이다. 번외로 이태원동의 남쪽 보광동은 주택 위주의 지역인데 재개발도 안되어서 옛날 골목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특히 언덕이 많아서 일부 언덕길의 경우 거의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가파르며 길 옆을 계단식으로 해서 올라가야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이쪽 구간을 운행하는 마을버스의 경우 대형 차량이 다니기 어려울 정도라 소형 차량만이 다니고 있다. 대신 배차간격이 짧은 편이다.
이태원은 서초구 서래마을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인 다문화 거리로 꼽힌다. 과거 미8군 사령부(일명 용산미군기지)와 인접해있어서 주한미군들의 유흥가로 발전하게 되었고, 많은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는데 덕분에 여러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이태원에 전파했기 때문이다. 외국 대사관이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이태원1동의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은 25%를 넘는다.
이태원 소방서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이슬람모스크인 서울중앙성원이 있어서 무슬림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무슬림들은 아랍권이나 터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등 이슬람 국가에서 온 이들이 많다.
다양한 세계요리 전문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슬람권 식당이 강세다. 당연하게도 현지 물가에 비해 훨씬 높은 가격인 경우가 많다. 평범한 한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면 1인당 만원은 가볍게 넘어간다. 이슬람 모스크 근처에는 중동이나 아랍쪽 음식을 파틑 음식점들이 제법 있다. 특히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빵집이나 할랄푸드를 파는 식품점이 많다. 빵집의 경우엔 차와 커피 문화가 발달한 이슬람답게 간단한 바게뜨도 일반 빵집에 비해 맛이 좋은 편이다.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빵을 사서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는듯 상인들이 하나같이 한국어에 유창하다. 하지만 외국인에 비교되는 차별대우를 받아서 불쾌했다는 경험담도 종종 올라오니 업소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식도락가들을 유혹한다. 이미 한국에서 제법 대중화된 인도 커리는 물론이고 국내 유일 불가리아 레스토랑을 비롯하여 남미의 브라질요리, 발칸반도의 구 유고슬라비아요리,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직접하는 전통요리나 시칠리아식 이탈리아요리, 본토식터키케밥 후식으로 유명한 터키아이스크림 돈두르마를 먹을수도 있다. 한국에서 영국식 펍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은 곳도 이태원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2~3만원 주고 먹어야할 음식들을 이곳에서는 1만원 안팎으로 즐길 수 있다. 또 한국에 노바다야끼가 최초로 자리잡은 곳도 이태원이다. 지금은 위엄이 많이 죽긴 했지만, 소방서를 지나 제일기획으로 가는 쪽에 노바다야끼 가게가 즐비했다. 그 밖에도 이집트, 요르단,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태국, 필리핀, 주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노점상이 즐비하기에 본고장 맛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꺼번에 죄다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아프리카 음식도 볼 수 있다. 국내 유일 에티오피아 식당도 존재하는데 원래 음식점인 곳은 아니고 평소에는 클럽으로 사용되는 곳이며 일정시간 동안에만 음식을 파는 곳이다.
흑맥주를 맛있게 뽑아내는 곳이 많은 곳도 이태원이다. 대부분 한국의 펍에서는 기네스를 잘못 뽑아내거나 전기분해로 생맥주 흉내를 내는 캔맥주를 내오는 곳도 많은데, 이태원은 맛과 질 모두 만족할만한 기네스를 파는 곳이 많다. 게다가 앨리캣이나 킬케니 같이 구하기 힘든 흑맥주를 파는 곳도 많다. '한국맥주는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맛없고 획일화되어있던 한국맥주 시장에서의 수제맥주 열풍의 시작도 이태원이다. 크래프트비어라고도 불리는 수제맥주는 기존의 맥주와는 다르게 물, 맥아, 홉, 효모 등 재료와 혼합 비율, 발효법에 따라 각기 다른 맛과 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매년 10월 열리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는 맛집사장들이 이태원대로에 총출동하니 번거롭게 찾으러 다니기 싫다면 이날을 노리는 것도 좋다.
이태원하면 클럽으로도 유명한데, 홍대와 강남, 부산에 이은 4대 클럽 밀집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 게이 문화의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게이 문화는 원래 종로3가역 인근 낙원동이 중심지였지만 그 지역은 너무 낙후되어서 슬럼가가 되다보니 지금은 술집이 많아 1차로 가는 곳이 되었고, 2차로 클럽을 갈 때는 이태원으로 간다. 방송인 홍석천도 이 일대에 레스토랑을 서너 곳 운영해 이태원 재벌이란 우스갯소리도 들었지만, 코로나19 여파도 2020년 레스토랑 문을 닫았다. 한편 이태원의 게이바와 게이클럽들이 하필이면 이슬람모스크 앞에 많이 모여있어서 서로 모순된 광경을 연출한다.
한국의 게이바는 혼자 가서 상대를 찾는 장소가 아니라 친한 게이들끼리 놀러가서 술을 마시는 커뮤니티 혹은 혼자가서 게이 바텐더들과 말상대가 되어주는 그저 그런 바일 뿐이다. 게이 외에 트렌스젠더바도 많이 있다. 게이바는 그냥 봐서는 잘 모르지만 이쪽은 크게 써붙여놓고 있어서 찾기 쉽다. 여기 살고 있는 외국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카사노바 기질에 불량한 사람들도 비교적 자주 보이지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다. 심지어 35년도 더 된 예전의 신문에도 나온 적이 있는 나름대로 전통적인 곳.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입식품 마트가 몇 군데 있으며, 한국인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제법 상권이 있음에도 대형마트나 백화점,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없다. 서울역이나 용산역으로 가면 찾을 수 있지만 거리에 비해 둘 다 4호선 환승이 강제되는 등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다.
이곳의 의류매장들은 대부분 빅사이즈를 구비해놓고 있다. 일부 전문매장은 상의 XL, 하의 36인치가 제일 작은 사이즈인 경우도 있으며, 60인치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바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다만 정작 체중 문제로 고심하는 외국인들은 한국 상인들이 웨스턴 사이즈(서양사이즈) 옷이 있다고 호객할 때면 뚱보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 우울해진다고 한다.
2020년 방영된 웹툰 원작 드라마 이태원클라쓰가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국내외에서 흥행하면서 주변 상권이 다시금 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클럽 등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가 나면서 빛이 바랬다. 사실 전에도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에 따른 미군 부재로 어느정도 침체는 시작됐었지만 그래도 관광객이 늘며 커버치고 있었는데 그나마 관광객도 끊겨버린 상황이다.
*이태원 클럽
홍대나 강남에 비해 정장 패션을 잘 받아준다. 나이대는 강남과 비슷하고 홍대에 비해서는 연령대가 높다. 위치가 위치인만큼 외국인 또는 주한미군이 상대적으로 많은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음악적인 흐름만큼은 서울의 마포권역과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서울 강남권역이나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힙합이 EDM보다 더 강세인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용산구의 주한미군 주둔지가 경기도 평택시로 이전하면서 주한미군들 특유의 힘찬 분위기는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외국인들이 여전히 이태원에 거주하거나 방문을 많이하기에 여전히 이국적인 분위기의 클럽이나 펍들이 운영되고 있다.
90년대에는 문나이트라는 클럽이 유명했으며, 당시 한국 가요계의 유명인사들이 자주 이용했다고도 알려져있다. 물론 2010년대에 부활했다. 또한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아는사람만 아는 정도의 게이 클럽이 많은 지역으로, 서울의 게이 클럽은 모두 이곳에 모여있고 80년대부터 시작된 유서깊은 서울의 게이공간 중 하나다. 다만 일반적인 이태원 댄스클럽들과 달리 상당수가 약간 변두리쪽인 골목에 몰려있는 모양새다. 주변에는 트렌스젠더바들이 널려있으며 이들 역시 이태원의 게이공간이 형성되었을때부터 역사를 같이해왔다. 운영 방식이나 인테리어는 일반 클럽과 별 차이 없지만 특성상 남자들이 대다수다.
2020년5월 코로나19확진자가 다수 발생해서 한국의 로컬 클럽씬 중 처음으로 타격을 입기 시작한 클럽씬이 되어버렸다. 확진자가 주로 방문했다는 이태원 K모, T모 클럽은 게이 클럽으로 분류된다. 참고로 K클럽은 80년대에도 존재했던 유서깊은 클럽이고 2000년대에는 순도 높은 힙합클럽의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현재는 게이클럽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그런데 메이드 방문자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씬 전체에 비상이 확실히 걸렸다. 후에 조사에 따르면 이미 코로나19 진원지로 만들어진 상태라서 이태원 클럽 자체가 코로나 클럽으로 낙힌찍힌 상태다. *
9-11-1. 이태원1동
이태원역과 이태원로 주변은 이태원1동으로, 이태원 상권을 형성하며 용산구청도 이곳에 있다. 동북쪽은 남산힐레지던스같은 고급빌라가 있으며 이건희회장의 자택을 비롯한 한국 최고의 부촌이 자리잡고 있는데 한남동과 이어져있다. 반면 남쪽은 주택과 아파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태원 앤티가구거리가 이태원역에서 보광로를 따라 청화아파트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까지 이어져있다. 이외에 갤러리 골목 (녹사평역 근처 위치), 백해영갤러리(이태원역 북쪽 언덕에 위치), 이태원의 여러 클럽/라운지, 재즈클럽인 올댓재즈, 해밀턴호텔이 있다. 학교로는 천주교서울대교구이ㅏ태원성당 건너편에 보광초가 있다.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조지아대사관, 벨기에, 태국 대사관저가 있다. 용산구에서 외국인이 제일 많은 동네는 한남동이지만 인구대비 외국인비율은 이태원1동이 제일 높다.
9-11-2. 이태원2동
경리단길 주변과 그 위쪽으로는 이태원2동으로, 육군중앙경리단에서 하얏트호텔 앞까지 회나무로 일명 경리단길이 관통하고 있다. 남산야외식물원, 표갤러리(하얏트호텔 근처 위치), 이태원우체국, 주한 키르기스스탄대사관, 덴마크대사관, 알제리대사관, 필리핀대사관, 케냐대사관, 에티오피아대사관, 아르헨티나대사관, 피지대사관이 있다. 학교로는 이태원초와 서울디지텍고가 있다.
9-12. 한남동
본래 행정동은 한남1동과 한남2동으로 나뉘어져있었으나, 2008년에 하나로 통합되었다. 단위가 다르긴하지만 강남구와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 부촌으로 유명하며 4대 재벌회장 일가가 모두 모인 동네다. 원래 '한강리'였으나 1936년 고양군 한지면에서 경성부로 편입될 때 경성부에 이미 한강통(현 한강로동)이 있어 지명 중복을 피하기 위해 한강리의 '한'과 남산의 '남'을 따 '한남정'으로 개칭되었다. 해방 이후 일본식 행정구역 단위명인 '정'이 '동'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위치는 매우 좋다. 서울 중앙부에 위치하여 사통팔달이다. 교통은 버스만으로 도심과 강남을 쉽게 왕래할 수 있고, 자동차가 있으면 더 편하다. 요악하면 살기좋은 입지를 가진 부촌의 특성을 갖춘 지역으로, 풍수지리적으로도 앞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으며 뒤에는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의 명당으로 꼽힌다.
서울뿐 아니라 국내 최고의 부촌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기초수급을 받는 서민층, 저소득층인 주민들과 굴지의 재벌총수가 같이 살고 있다하여 한국의 빈부격차에 대해 얘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동네 중 하나였다. 한남동에 존재하는 달동네가 서울시의 재개발사업승인으로 곧 고급주택화되고 한남오거리의 고가도 철거되어 주변 전체가 고급화될 예정으로 이제 그런말도 옛 말이 될 듯하다. 2018년7월10일에 철거하려고 했으나 1년 연기되었다가 이후로 철거가 백지화되어서 보수공사를 하였다.
성북동, 평창동, 이태원동과 함께 강북 4대부촌으로 꼽힌다. 같은 강북의 부촌이지만 한남동은 성북동과는 이미지가 약간 다르다. 성북동에는 전부터 고관대작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근대화 이전에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후손들 비중이 높은 편인 반면 한남동은 해방 이후 새롭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져있다. (성북동 근처의 부유한 동네에는 기존 부유층들만 살진 않는다. 주로 현대 일가와 정재계 타 유명인사들도 많이 거주한다. 또한 현재도 한남동 못지않게 많이 거주하고 있다. 거기다가 인근 혜화동이나 삼청동도 몇몇 부유층들이 거주하는 동네로 유명하다.)
용산구도 경부선 서쪽의 서계, 청파, 효창 등지는 생활권을 공유하는 마포구 동부~ 서대문구 남부와 같이 일반 서민 주거지다. 반면 한남동에는 1950~70년대에 부를 축적한 누보 리쉬(신흥 부유계층 또는 졸부)와 그 가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노부 리쉬라고 해도 2010년대의 시점에서는 올드 머니지만, 그래도 초호화 빌라와 타운하우스가 꽤 있는 동네의 특성상 특급 연예인이나 사업가 등 신흥 부자들의 유입도 계속 있는 편이다. 평창동과는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위치적 특성상 평창동에는 예술종사자, 한남동에는 재계 인사들이 더 많은 느낌이다.
이동네 사는 사람들은 강남도 별거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곳 주민들 중에는 강남에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고층 빌딩을 서너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몇 있다. 그리고 이 동네 단독주택들은 최소 50억원, 고급빌라는 30~40억원, 땅값은 층수가 낮은 주거용 부동산임에도 평균 1억이 넘는다. 50억정도면 강남구, 서초구의 유명한 아파트들 펜트하우스 가격이다. 그게 한남동에 보이는 집들 평균 가격이라는 이야기다.
성북동이 종로구, 중구의 서울 도심 생활권을 공유한다면, 이쪽은 중구와 종로구 그리고 강남구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도심 생활권과 강남 생활권을 공유한다. 교육관련으로는 같은 생활권인 압구정동과 학군을 일부 공유하며 일반적으로 달동네를 제외하고 한남동에 사는 사람들은 국제학교, 유학 등을 선호하나 압구정 쪽으로도 많이 자녀를 보내는 편이다.
이태원동과 함께 소위 재벌 회장님 일가가 모여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는데 부촌으로 형성된 한남동 지역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이 점 역시 성북동, 평창동과 차이가 있는 한남동만의 특성이다.
먼저 삼성미술관 리움 인근 및 그랜드 하얏트 서울 아래 쪽에 형성된 주택지들이 첫번째로 꼽힌다. 소위 4대 재벌 회장 가운데 3명이 이곳에 거주하고, 나머지 1명은 한남더힐 100평형에 거주한다. (리움 인근에 비교적 작은 단독주택 한 채를 소유하고 있으나 다른 기업인에게 전세를 주었다.) 이래원역 해밀턴호텔 뒤편에 운동장만한 대저택촌이 이곳이다. 이태원로 27길과 55길에 형성되었다. 이길에 한남동 북부와 이태원로 북쪽의 이태원1동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시가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있어 사실상 한 동네다. 이태원동은 대체로 삼성그룹 일가가 거주하는 곳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태원동에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이병철이 이 지역에 한옥을 세워 그곳에 기거하게 되었고, 그의 3남인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가 개인 집무를 맡기도 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삼성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 관련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승지원이다. 그는 주로 삼성그룹 본관으로 출근하기보다는 주로 승지원에서 기거하며 본사로 출근하느 대신 중요한 집무를 이곳에서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만 아니라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을 비롯한 자식들과 부인 홍라희도 이곳에 주택을 소유중이다. 심지어 삼성 임원들만 이용 가능한 치과병원도 이곳에 있으니 하나의 삼성타운을 형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도 거주중이다. 그 밖에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이중군 부영그룹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농심그룹의 창업자인 신춘호 회장 일가, 메리츠금융그룹 조정호 회장, 연예인으로는 배우 송중기 등이 이 지역에서 사는 인물들 중 일부다.
2016년8월말 기준으로 대한민국 주식자산이 1조원이 넘는 주식부자는 모두 24명이었느데, 이 가운데 58%인 14명이 이태원동과 한남동에 거주한다. 전술한 것처럼 각국의 대사들도 여기에 많이 산다. 이렇게 부촌이 형성된 이유는 일단 교통이 좋은점과 대사관과 주한미군부대가 가까워서 당시 신진 문화를 쉽게 접하며, 외교계 인사들과 사교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점 등이 있다.
한강 바로 뒤 유엔빌리지와 한남더힐은 한남동 북쪽에 맞먹는 양대 부촌이다. 한강 조망권이 탁월한 전형적 배산임수 지역이라 고급빌라와 일부 저택이 대규모로 형성됐다. 고급빌라들 사이에서도 격차가 상당한 편인데, 저렴한 라인은 10후반~20억대이며, 로열라인(코번하우스, 헤렌하우스, 제이하우스, 클라인하우스, 한남리버힐 등)은 40~70억대 매매가를 호가하며 보통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재벌 오너일가들도 많이 거주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과 네 자녀들이 모두 모여산다. 두산그룹, 한진중공업,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오너가문, 김준기 DB그룹 회장, 롯데그룹 신동비 회장도 이곳에 빌라를 한 세대 소유하고 있다. 연예인 중에서는 신민아, 이헌재, 소지섭, 이종석, 신영균, 엄정화, 견미리, 이혜영, 싸이, 빅뱅 탑, 강다니엘, 윤지성, 이창하, 대도서관, 윰댕, 박나래 등 재벌가와 유명 연예인이 주로 산다. 이쪽은 연예인들은 주로 고급빌라, 회장님들은 저택에 거주한다. 통일교 관련 종교수련시설도 있으나 실제로는 통일교의 문선명 일가도 여기에 주거지를 두고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이곳과 리첸시아 사이의 독서당로 골목에 여러 맛집과 카페가 있다. 또한 이 일대에는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하며 그들의 자녀를 위한 서울독일학교도 있다.
과거 단국대학교의 부지가 이곳에 있었으며 지금은 전부 철거된 후(당시 매각 금액이 무려 2천억원. 한남더힐의 좁은 면적을 생각하면 한남동의 땅 가치는 정말 어마무시함.) 금호건설이 지은 한남더힐 이라는 아파트가 지어졌다. 2016년 일반분양이 실시됐는데 사상 최고가인 3.3평방미터당(평당) 8,150만원에 분양이 이루어졌다. LG그룹 구광모 회장을 비롯하여 안성기, 이승철, 한효주, 추자현, 방탄소년단,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허희수 SPC그룹 전무, 금호와 두산그룹 오너 일가가 여기 산다.
그 외에 조선왕실 소유였던 제천정 자리에 하이페리온과 힐스테이트가 있다. 특히 한남 하이페리온에는 최순천 일가 및 안재욱이, 한남 힐스테이트에는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 부회장, 서효림, 가희 등 유명인이 다수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이다. 이 외에 나인원한남이 들어섰다. 나인원한남 역시 배용준박수진부부, 도경완장윤정부부, 주지훈, G-DRAGON, 이종석 등 유명인들이 거주하는 고급아파트다.
제2의 가로수길로 불리기도 하는 꼼데가르송길 (이태원역과 한강진역사이)이 위치해있는데, 보면 고급 매장과 카페들이 제법 들어서 있다. 블루보틀 한남카페가 생겼다.
9-13. 서빙고동
조선시대의 얼음 창고인 서빙고에서 유래된 곳으로, 여담으로 한강 남쪽에 월경지를 두고 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건물이 있는 한강 월경지이다. (특히 마수시설 등 사람이 머무르는 시설까지 들어선 한강 월경지로는 유일함)
서빙고역,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국박물관, 용산가족공원, 서빙고초, 한강중, 그린파크, 금호베스트빌아파트, 신동아파트, 국방부 임대아파트인 용산푸르지오파크타운아파트가 있다.
구의 북서쪽은 미군 부지이며 반포대교가 반포동과 연결한다. 비비안본사, 캐피탈호텔도 이곳에 위치한다. 반포대교 서쪽은 부촌인 반면 동쪽에는 재개발 지역도 존재한다. 특히 동빙고동이나 주성동은 아직도 주택빌라촌이 많다.
대사관 밀집 동네인 용산구답게 주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란, 카타르, 이라크, 쿠웨이트, 레바논, 터키, 카자흐스탄, 튀니지, 수단, 나이지리아, 독일, 헝가리,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대사관이 있다. 이들 대사관은 대체로 장문로 근처에 위치해있으며, 또한 뉴질랜드, 네덜란드, 헝가리, 우루과이, 르완다, 필리핀, 브루나이 대사관저도 있다. (캐피탈호텔에서 쭉 내려오면 대사관들이 줄지어 있다.) 과거 고문으로 악명높았던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이 이곳에 있었다. (현재 서빙고초 옆 대원아파트 자리)
서울의 중심지역에 위치해서 도로교통은 아주 좋으나 평지지형이 적은데다 전통시장, 대형마트, 영화관, 상점, 병원 등 각종 시설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서민생활에는 좋지 않은 동네다. 부촌인 신동아아파트와 푸르지오 군인 관사로 인하여 동부이촌동과 함께 용산구에서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동네다.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 득표율이 엄청 높다. (특히 신동아파트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압구정현대아파트와 함께 서울 전여겡서 TOP3로 보수성향이 막강하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셋다 21대 총선 기준 미래통합당 후보 득표율이 80%를 훌쩍 넘겼따.)
9-14. 보광동
우사단10길이 보광동과 한남동을 남북으로 가른다. 오산중, 오산고, 한국폴리텍1대학 정수캠퍼스가 있으며, 재개발과 재정비가 예정된 지역이다. 과거 삼성여객 차고지가 있던 곳이다.
10. 기타
이태원동/한남동의 경우 성북구 성북동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재벌가 일원들이 거주하는 부촌으로 유명하다. 대충 살펴보면 삼성그룹의 이건희, 농심그룹의 신춘호,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신세계그룹의 이명희, 대상그룹의 임창욱, 이창하디자인연구소 이사인 이창하 등 여러 높으신 분들이 용산에 거주하고 있다.
동부이촌동이나 서빙고동은 고가의 아파트,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밀집해있어 주로 고령의 자산가나 고소득자들이 거주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강을 끼고 교통도 좋은데다 동네 환경도 좋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용산역 옆 주상복합 아파트인 용산시티파크에 롯데그룹의 신영자 이사장이 살았으며, 용산파크타워에 안철수 의원이 2012년 대선 후 출국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
동부이촌동 일대와 한남대교 북단 강변에 소재한 한남동 유엔빌리지 지역에는 연예인들도 많이 거주한다. 통일교의 문선명 일가도 여기에 주거지를 두고 있는데 종교수련시설로 되어있다. 한남동 공관촌도 존재한다.
박명수 역시 서래마을에 살다가 용산구 이태원동으로 이사왔다. 노홍철도 압구정현대아파트에서 홍철책빵이 있는 후암동으로 이사왔다.
독립운동가인 이봉창 의사의 고향이 바로 용산구 효창동이다. 가수 이미자의 고향도 바로 용산구 한남동이다. 가수 윤은혜와 가수 장원영의 고향이 용산구 이촌동이며, 할리우드 배우 존 조가 이민가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 용산구 보광동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