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
부산광역시의 옛 중심지였던 중구와 영도구, 동구와 서구 등 역사적으로 부산부였던 지역을 통틀어 부를 때 사용되는 단어다. 부산광역시청의 소재지였던 만큼 과거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던 지역이다. 그래서 이름도 원도심인 것이다. 옛 구를 써서 구도심으로 부르기도하지만 몰락한 과거의 도심이라는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원도심이라고 표현한다.
더군다나 부산의 원도심은 몰락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오늘날 제1의 상권인 서면을 비롯해 해운대, 부산대, 대연동, 덕천, 하단, 사상 등 새로운 상권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도심(정확히는 남포동-광복동 일대)은 여전히 서면에 이어 부산 제2의 상권을 유지하는 중이다. 서면과 유동인구 및 방문객 수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지금의 롯데백화점 광복점 위치에 부산광역시청이 있었다. 때문에 이 교차로의 명칭이 옛시청교차로다. 옛시청이라고 한다면 십중팔구 이곳 남포동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적 도시로서의 부산이 처음 번성했던 부산항 인근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왜관을 중심으로 일본인 집단 거류지였는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산을 없애고 원도심 해안가를 모두 매립하였다.
또한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곳에 항구가 있어 일본과의 교통이 편리한 이곳이 부산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부산역전 대화재 이전의 부산역도 현재보다 이쪽으로 더 붙어 있었으며 부엇보다 부산부청이 이곳에 있었기에 그야말로 명실공히 부산의 중심이라 할 만 했다. (부산부청은 지금 롯데타운타워) 그러나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데다가 부산잔교역을 통해 공출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으며, 특히 경성역이 아닌 이쪽 방면을 (도쿄 방면) 상행이라 불렀던 점이 조선인들의 반감을 사 당시엔 이쪽 동네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1945년 해방이 이루어지고 일본인들이 축출당하면서 동네 이름도 해방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광복', '충무'로 바뀌었다.
이후 원도심권이 밀려나게 된 시발점은 옛 동래 지역권의 발전에 있었는데, 특히 현 부산 최대 도심인 서면 지역의 발전이 원도심에 치명상을 입힌 것으로 생각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산시청과 부산지방법원 등의 공공기관 이전, 문현금융단지 조성으로 한국은행과 금융기관의 이전, 부산신항 개장으로 항만기관의 이전이 큰 타격을 줬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협소한 남포동에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센텀시티로 이전을 하면서 원도심은 그야말로 쇠퇴기가 찾아오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쇠퇴기가 2010년대 이후 주춤해졌다는 것이다. 광복로의 가로재정비사업과 함께 구 부산시청 자리에 롯데백화점 광복점 등이 개장하면서 관광상권으로 다시 유동인구가 늘어나 어느정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0년대 기준으로 서면에 이은 부산 제2의 상권에 해당한다.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2. 위치
실생활에서는 말 그대로 도심이었던 지역만을 칭하는 경우가 많아 좁게는 남포동을 중심으로 광복동, 충무동, 부평동, 주앙동, 동광동 정도를 묶어 부르는 데 쓰이고, 넓게 잡아도 보수동, 토성동, 남부민동, 송도(암남동) 정도의 선을 벗어나지 않으며, 드물게 옛 부산전차 종점과 부산운동장이 있었던 대신동까지 이 범위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선을 따르면 지도의 영역보다 좁아져서 동구는 사실상 제외되고 중구와 서구 일부만을 부르는 명칭이 되므로, 행정적으로만 재생 필요 지역이라는 의미로 '원도심'이라는 단어 안에 '동구-영도-사하'까지 묶어 이야기하는 것이 적당하다. 다만 아무리 넓게 잡아 동구까지 묶어도 좌천동이나 범일동까지를 구도심으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좀 늦게 부산부에 편입되고 90년대 초반에 서구에서 분구된 사하구 지역의 경우 아예 강서구와 묶어 별도의 서부산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 때는 서구도 은근슬쩍 서부산에 끼기도 한다.
흔히 남포동이라 불리는 번화가 지역인 광복로와 BIFF거리, 롯데백화점 광복점, 자갈치시장, 부평깡통시장과 보수동 책방골목 등 다수의 상업시설이 밀집해있다. 주로 부산 토박이가 원도심 또는 남포동을 가자고 말하면 십중팔구 중구를 칭한다. 부산역은 행정구역상 동구에 위치해있어 이 경우에는 보통 포함하지 않는다.
3. 기타
부산시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서구, 중구, 동구, 영도구를 하나의 구로 통합하여 통합 자치구로 출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찬성 여론이 우세하지만 중구에서는 55%가 반대했다. 중구쪽은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구를 통합한다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생각된다. 만약 통합된다면 인구 4만 2천여명에 웬만한 행정동 면적만한 중구에 부산 제2의 번화가 및 상권이 밀집해 있으니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원도심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 중 몇몇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영주동 봉래초등학교는 1896년 개교, 대청동 구 남일초등학교는 1912년 개교, 동광동 구 동광초등학교는 1921년에 개교했다.
4. 중구
부산광역시의 남부에 위치한 자치구로, 남동으로는 부산대교와 영도대교를 경계로 영도구, 서로는 서구, 북동으로는 동구와 접한다. 하지만 이 곳을 남부산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중부산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가장 좁은 기초자치단체이며, 인구 또한 대한민국의 모든 자치구를 통틀어 가장 적은데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의 인구보다 중구의 전체 인구 수가 더 적다. 화명1동보다도 적다.
1957년 부산시에 구제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로, 구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동보다도 스펙이 딸린다. 다른 자치구 같았으면 일찌감치 통폐합되었을텐데 구한말 개항 이후부터 지금까지 부산광역시의 중심이라는 역사성을 감안하여 그대로 존치되고 있다고한다. 실제로 국회의원 선거구는 마찬가지로 인구가 적은 옆동네 동구와 공유했었지만 20대 총선에서는 영도구와 선거구가 통합되었다.
주거환경면에서는 구도심권 대부분이 그렇듯 낡은 단독주택이 많아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면적이 좁고 평지가 적어서 대로에 접한 보수동이나 대청동 일부를 제외하면 산복도로를 끼고 주택들이 형성된 모습이다. 남포동, 광복동 등 평지의 도심에 있는 건물이라고하여 또 결코 사정이 나은 편도 아니다. 대개 1960~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많은데다 일본식 적산가옥도 상당 수 남아있는 실정이다. 다만 중앙동 일대는 직장인들을 위한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가 상당수 들어섰고 광복로 일대 역시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고 신축건물이 들어서는 등 변화하는 모습이다.
중구의 면적이 워낙 좁고 인구 역시 매우 적다보니 인접한 동구, 서구, 영도구와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이 4개구는 동래부에서 부산부가 분리될 때 같이 부산부 소속으로 분리되어 역사성과 동질성이 매우 강하며 교통이나 학군, 상권 등 여러 면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만 원도심 4구가 도심공동화 및 노후화의 영향으로 모두 인구감소세가 뚜렷하여 중구와의 통합론이 점점 불거지고 있는 사황이다.
현재 중구와 동구는 북항재개발 지역 경계 문제로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만약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경계 분쟁도 자연스럽게 무마될 것이다. 또한 중구와 동구 모두 부산의 유명 관광지를 대거 포함하고 있어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관광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중구는 통합 구의 명칭은 중구로 하며, 구청도 중구에 소재해야한다는 원칙을 고수 중이라 가까운 시일 내에 통합은 어려워보인다.
일제강점기 당시 바다였던 중앙동과 남포동 일대를 매립하였고 부산역, 부관연락선, 초량 왜관이 가까이 있어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자리잡은 피난민들로 주민 구성원이 바뀌어 갔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구는 부산의 도심이었다.
그러다 남포동, 광복동 상권은 2000년대 중, 후반 광복로의 간판정비와 보도정비 이후 상권이 되살아나고 있다. 업소의 매출이 늘어나고 권리금과 토지가격도 뛰었다. 광복로 크리스마스트리 축제, 영도대교 복원, 자갈치시장 현대화,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개점이 맞물리면서 전성기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유동인구가 증가하자 요식업체들과 커피숍이 개점하였고 광복로에 주요 의류 브랜드들의 가두매장이 서면보다도 더 먼저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광복로 뿐 아니라 국제시장 인근의 지하상가와 재래시장까지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상구너이 회복되면서 도심 재생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다.
광복로와 남포동 상권이 살아남과 동시에 이 일대지역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깔끔해진 거리에 보수동 책방거리, 부평시장, 국제시장 등 부산만의 특색있는 공간과 씨앗호떡, 완당 등 유명 요리들의 명성이 더해져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상권회복이라는 밝은 면 뒤에는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상권이 회복되고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건물주들이 앞다투어 건물 임대료를 올리면서 일부 가게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중심 상권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대기업 계열 매장들이 들어오는 현상이 진행 중이다.
부산의 중심지인 서면에 비하면 많이 초라해지긴 했지만 썩더옫 준치라고 남포동 상권은 아직까지 건재한다. 특히 옛시청 부지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시네마가 있는 롯데몰 광복점을 세웠고, 제2롯데월드 고층건물을 세우려고하면서 상권 부흥을 꾀하고 있다. 구도심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찾으며, 서면은 주로 유흥위주고 남포동은 가두의류매장위주의 상권으로 그 성향이 완전 다르다.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40계단공원,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등이 중구 보수동, 대청동에 있다. 이들은 과거에 부산을 상징했던 랜드마크로 명성을 떨쳤으나 지금은 광안대교나 해운대쪽에 약간 밀리고 있다. 외국 공관들이 중앙동에 밀집해있다.
자갈치, 남포동-광복동 상권, 부산타워 등 매우 좁은 면적에 부산 관광명소는 다 들어가있다보니 주거지 비중은 적은 편이다. 영주동, 보수동 일대 주택가에 주민들이 모여 살며 보수동 인근은 경사진 계단과 산복도로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부산의 산동네다. 대도시의 원도심답게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잇기도 하다. 고령화도 상당히 진척되어 노인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라는 오명을 얻었다.
중앙동에 시중은행, 증권자, 각종 투자회사 등 금융시설들이 모여있다. 해운회사나 상선회사들도 중앙동에 주로 소재하고 있으며, 외국계 무역회사나 사무실들도 이곳에 밀집해 있어 외국인 비율도 원도심에서는 가장 높다. 연안여객부두가 이 지역에 있다. 전통시장도 많다. 신동아시장-자갈치시장-국제시장-부평시장)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선 후 회복된 남포동-광복동 상권 도소매업 종사자들도 상당수 된다.
4-1. 중앙동
중앙동은 원래 바다와 산으로 이루어져있었으나 일제강점기때 산을 모두 없애고 산을 깎아 나온 흙과 돌로 바다를 매립하여 땅을 만들었다. 또한 상업지구와 번화가로만 이루어진 지역으로 중앙동에는 학교 등의 교육시설과 아파트 단지가 없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의 경제 중심지였다. 각종 해운회사, 금융회사, 언론사, 인쇄업체 등 대부분 기업이 이 곳에 몰려있었으나, 1990년대 부산MBC이전, 부산시청 이전, 2000년대 부산항이 부산신항으로 이전, 2010년대 이후에는 금융업의 문현금융단지 이전, 지점 통폐합 등으로 인해 관련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이전하면서 현재는 공실 건물이 많은 상황이다.
중앙동은 서울 을지로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상업지구라 평일에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심야시간대와 주말에는 거리가 조용하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정도다. 일부 노후 건물들은 현재 호텔이나 오피스텔 등으로 재건축하고 있으며, 이는 북항재개발과 관련이 있다. 아직 80년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보니 영화나 드라마 촬영도 잦은 편으로, 대표적인 영화는 범죄와의 전쟁, 도둑들, 인정사정볼것없다 등이 있다.
4-2. 동광동
행정읍면동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좁은 곳으로, 주거단지지만 사실 이 곳이 부산 인쇄업의 원조라고 불릴만큼 중소규모의 인쇄업체가 몰려있는 곳이다.
4-3. 대청동
중구청이 있는 곳이다. 크게 대청로 연선의 남부와 복병산,구봉산을 양옆에 두고 형성된 노후주택이 몰려있는 북부로 나뉜다. 남부는 시내버스 노선이 많아서 교통이 제법 편리한 축에 속하지만 유동인구에 비해 상업지구는 상당히 보잘 것 없다. 북부는 열악한 도로사정으로 인해 교통이 상당히 불편하다. 특히 영주동 방향의 최북단 쪽은 지옥의 산복도로라 거주민들은 집에 가려면 이른바 등산을 해야할 정도.
4-4. 보수동
중구의 북서쪽 귀퉁이에 있는 동네로, 보수동 책방골목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 면적이 주거지로 쓰이고 있어서 인구가 가장 많다. 보수대로 바로 옆과 책방골목 근처 일부분만 평지고 나머지는 대부분 산복도로 주변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전형적인 부산의 산동네다.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유명하다. 고저차가 심한 동네이며 해오름다리와 보수구름다리가 있다.
4-5. 부평동
면적의 대부분이 부평시장인데다 도도를 사이에 두고 국제시장과 마주보고 있어서 유동인구가 장난 아닌 동네다. 다만 청년층 유동인구가 많은 남포동, 광복동에 비해 여기는 상애적으로 중장년층과 노년층 유동인구가 더 많다. 부평깡통시장과 부평족발골목이 유명하다. 대부분은 남포동으로 뭉뜽그려 소개되지만 최근엔 야시장도 많이 유명해졌다.
4-6. 광복동
과거 일제시대에는 장수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광복동으로 새 이름을 지었다. 한 때는 바로 옆의 남포동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손꼽히던 동네였으나 현재는 그 지위를 중심도심격인 서면에 상당부분 빼앗겨버렸다. 그래도 광복로를 따라 몰려있는 상업지구는 아직까지 건재하고 특히 2010년대 들어선 광복로 리모델링 등의 효과로 다시 상권이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광복로를 중심으로 빈 점포가 하나 둘 생기더니 현재는 대부분의 점포가 비어 휑한 상황이다.
광복패션거리와 용두산공원, 국제시장의 절반 가량을 끼고 있어 사실상 중구에서 대부분의 상업활동과 관광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지만 거의 모두가 남포동으로 알고있고 심지어 현지인들도 모두 남포동으로 싸잡아서 부른다. 사실 안그래도 작은 중구에 코딱지만한 곳들을 나눠부르는게 일반인 입장에선 의미가 없어서 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도 롯백 광복점의 경우 남포역을 끼고 있고 저명도도 훨씬 높은 남포가 아니라 광복의 이름을 쓰고 있다.
4-7. 영주동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달동네'로 설명이 끝나는 곳. 그만큼 가파른 산기슭에 조성된 낙후된 주거지가 많고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약자들이나 저소득층들이 많이 사는 달동네 이미지가 있는 지역이다. 교통사정 또한 그다지 좋지 않다보니 가파른 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모노레일이 주민 복지 차원에서 설치되기도 했다.
5. 동구
1957년 부산시에서 구제도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최초의 6개 구 중 하나이다. 법정동은 4개, 행정동은 많았었는데 도심공동화가 진행되면서 자꾸만 줄어들어 현재는 14개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부산항과 부산역 등이 있는 등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서 북항재개발의 주요 개발지역이기도 하다. 부산의 업무지구를 형성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범일동에 소재하였던 한국거래소였다. 이 외에도 메리츠화재 빌딩, DGB생명본사 등 부산의 대표적인 업무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도시철도가 지나는 중앙대로 인근을 제외한 지역의 대부분이 지형적 문제로 달동네다. 대충 꼽아보면 범일1/4동 일부, 수정 4/5동 일부, 좌천동 증산로 기점 윗 지역, 초량1/2/3/6동 정도가 있다.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곳 출신의 정치인들과 스포츠선수가 월등히 많은 편이다. 소위 1980년대의 명문고이자 전두환 정구너 하에서 경북고와 함께 유명세를 떨친 부산고가 바로 이 동구에 있기 때문이다.
5-1. 초량동
부산역과 북항재개발의 주요 사업 구역이 위치해있다. 대한민국의 중심역사인 부산역 앞에는 거대한 차이나타운과 미군을 대상으로한 위락시설인 텍사스거리가 들어서있어 주변의 풍경과 괴리감을 준다. 이는 조속한 정비가 필요해보인다. 북항재개발로 인해 부산국제여객터미널과의 연결테크가 건설될 예정으로, 역세권의 규모가 현재보다 상상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주거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었으나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어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초량3동 일대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현재 세 개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상황이며 이후 재개발이 계획되어 있다. 초량동 역시 중앙동 - 좌천동으로 이어지는 부산의 CBD로서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 중이나 앞서 열거했듯 주거지역과 업무지역의 괴리감이 상당하다.
5-2. 수정동
오랫동안 부산일보와 DGB생명 주위를 아우르는 상권을 '진역'이라 부르는데 과거에 부산진역이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 원래 부산진은 이곳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충장대로로 이전하여 구 역사는 폐건물로 남겨져 있다.)
동면적 대부분이 산이라서 동의 많은 부분이 달동네지만, 동 전체가 달동네는 아니다. 수정1동과 수정4동에서 구봉산 자락에서 내려온 거주지역의 절반정도는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거나 고도가 별로 높지 않은 일반적인 분위기의 주택가이다.
또한 부산진역 주위는 부산의 CBD의 연장선상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유동인구가 많아 유흥가가 형성되어 있고 (부산일보 건물 근처) 현재 북항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최근에는 메리츠화재 부산 사옥이 들어서는 등 업무지구의 확대가 예상되며 유흥가가 역시 활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흥가에서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조용하고 조금 낙후되어 보이는 주택가가 나오고 그 사이에 뜬금없이 최신식 유리궁전 동구청이 보이는 등 위와 같은 조건으로 보아 이 지역은 홍콩섬의 셩완지역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초량의 베드타운 정도로 인식될때도 있다.
5-3. 범일동
조방앞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일제강점기시절 '조선방식'이라는 방직공장이 있어서 줄여서 조방이라고 불렀다. 1968년을 끝으로 해체되었다. 한때 원도심의 부촌으로서 옛 국제그룹 회장이었던 양정모가 거주하던 저택이 현재 한정식집으로 문을 닫은채 보존되어 있으며, 의열단 소속의 독립운동가인 박재혁 선생과 정몽준 의원이 이지역에서 출생하기도 했다.
1970년대~1985년도에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범일2동 시민회관 인근에 위치해있었으며 시외버스터미널은 범천1동 성서초등학교 인근데 위치해 있었다. 버스터미널이 있었을때 유동인구가 많아 조방앞 일대는 엄청난 번화가로 성장했으나 고속버스터미널이 1983년에 동래구 온천동 미남교차로 인근으로 이전하고 시외버스터미널은 1985년에 동부시외버스터미널과 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분리하여 동부는 동래구 온천동 명륜역 인근으로, 서부는 사상역 인근으로 이전하여 이때부터 유동인구가 줄어들어 쇠락하기 시작했다.
현대백화점 부산점이 동 내에 위치하고 잇으며 현백 부산점은 2009년에 3대 명품브랜드인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을 모두 입점시키고, 프라다, 구찌 ,버버리 등 많은 명품 매장이 입점되어 있는 서울이남 유일한 백화점이었으나, 조방앞 상권의 쇠퇴와 더불어 인근 서면에 롯백 부산본점의 개장과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인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의 신규개장으로 2013년 모두 점포를 철수하는 굴욕을 겪었다. 여전히 명실상부한 부산의 브랜드 백화점이지만 주변환경 때문에 좋은 아울렛 수준의 오해아닌 오해를 사고 있다.
북항재개발에 힘입어 재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동네로, 현백 뒷편의 주택가는 재개발을 통해 49층 1,356세대 규모의 롯데캐슬 건설이 추진 중이며, 범일한양아파트와 삼익아파트도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범일5동에는 도심속의 섬이라 불리는 매축지란 일제시대 쪽방촌이 재개발이 취소된 후 보존되어 있었는데,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지 무려 27년만인 2017년 6월 중순에 두산건설이 시공하는 2,300세대 규모인 49층 높이의 두산위브 더제니스 하버시티 아파트 공사가 기존 주택들을 철거 후 진행하고 있다. 바로 북쪽에는 LH에서 건설한 '오션브릿지'라는 48층짜리 2개동으로 이루어진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제니스 옆쪽으로도 56층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가 건설될 예정이며, 매축지 마을 지역에만 총 5000여 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낙후된 가난한 동네에서 신축 아파트들이 모인 깔끔한 거주지로 탈바꿈 될 예정이다. 오션브릿지 동쪽에 위치한 한진택배부지도 대우건설에 3000억원에 매각되면서 주상복합이 건설될 예정이다.
5-4. 좌천동
좌천역 근처에는 부산최대규모의 가구거리가 형성되어있다. 현대 부산의 시작점이 보존된 능풍장마을이 구 좌천2동에 형성되어 있는데 지금도 능풍장 별장이 있던 동구 좌천동 일대는 능풍장길, 능풍장1길, 능풍장2길, 좌천로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능풍장의 경계라 여겨지는 좌천로를 기점으로 도로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대형 고급주택, 궁전빌라 와 같은 연식이 오래된 고급빌라들이 불량주택들과 혼재해있어서 오래전 홍콩의 미드레벨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능풍장 뿐만 아니라 과거 동명목재의 시작인 동명제제소와 해당제제소를 철거하고 해당자리에 건설했던 강석진씨의 대저택이 위치했던 곳으로, 현재 북항재개발 등으로 인해 상당한 부동산 가격인상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구 좌천2동지역보다 소득수준과 접근성이 떨어지는 구 좌천4동 지역의 접근성을 위해 산복도로 르네상스사업의 연장선에서 증산공원 입구까지 경사형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여 부산항의 전망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동 내의 전망은 상대적으로 다른 산복도로 지역에 비해 좋지는 않다. 산복도로보다 고도가 낮아서 그렇다. 도시철도의 수혜지역으로 좌천역/부산진역 모두 도보 5~10분 내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동의 지형적 특성상 고지대에 살면 도시철도와의 접근성이 떨어지는게 여전히 현실이다.
6. 서구
1957년 부산시에서 구제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인데, 당시의 서구는 지금의 사하구까지 포함된 넓은 구였다고 한다. 부산광역시에서 가장 조용한 동네 중 하나로 부산시에서 결핍도가 영도구에 이어 두번째로 높을 정도로 낙후도가 심하다고 한다. 구내에서도 빈부격차가 매우 심하여 부민동을 기점으로 남쪽 지역은 아미동, 초장동, 남부민동은 브라질의 파벨라를 연상시킨다. 허나 부민동을 기점으로 북쪽 지연인 동대신동, 서대신동은 원도심의 모습을 갖춘 부산의 구시가지라 할 수 있다.
한때는 부산의 중심지였던 구도심에 속한다. 부산 법원이 이곳에 있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에는 임시수도 청사와 대통령 청사가 이곳에 몰려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덕분에 한국 정부 주도의 국토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 만들어진 시가지치고는 도시구성이 잘 된 편이다. 다만 꽤 낡아서 60년대~70년대 사이 개발을 거친 이후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많이 적적해보인다. 그만큼 조용한 분위기가 좋다는 외지인들도 종종 있다. 낮이고 밤이고 굉장히 조용한 편에 속하는 동네다.
대한민국 현존 최고의 해수욕장이나 부산 제3의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1913년 개장)이 이 곳에 있다. 그 외 근현대유적이 많은 편이며 요즘은 송도해수욕장과 함께 송도해상케이블카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 암남동(송도) 일대에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데, 완공되면 서부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현대 힐스테이트 이진베이시티가 건설되고 있다. 높이 245m에 69층이다. 22년 5월 입주예정.
전체적인 면적은 좁으면서도 포함하고 있는 지역은 넓은 다소 기형적으로 상하로 길게 뻗어있는데, 사실 돈되는 지역들은 주변 구에서 전부 빼앗아간 탓이다. 이로인해 구도심의 주거지만 따로 떼어서 모아놓은 형태가 되었다. 특히 사하구가 치명타였는데, 사하구는 서구에서 분리 신설한 자치구이기 때문이다. 분리할 때 이상하게 사하구에 서구 면적의 80%가 들어가고 말았다.
한마디로 서구는 한적한 주택이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동네인데, 주요 시가지 인근의 주택가만 모아놓은 지역이 구덕산 내에 위치한 대신공원에서부터 해안가 지역인 송도해수욕장까지 길게 이어진다. 지리적으로는 부산의 번화가 중 상당수와 접하여있고 (서면, 부산역, 남포동 등) 실제로 교통이 편리하긴 하다. 그러나 편리한만큼 교통 체증도 많이 발생한다.
동대신동과 송도해수욕장 인근 빌라는 과거 부산의 대표적인 부촌지역이었던 곳이다. 부촌에서 볼법한 유려한 저택, 빌라들과 산복도로 풍경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산지 오래 된 동네라서 산까지도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산이나 계곡을 깎아서 만든 도로에 첩첩히 쌓아놓은 도시 모습을 볼 수 있다. 산간 동네에는 좁은 산복도로가 지난다. 이런 산간주택들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람들이 개발한 것으로, 일제시대까지만해도 전부 기와집 아니면 초가집이었고 지금만큼 경사진 고지대까지 집들이 올라가있지도 않았다.
서구의 경계인 산기슭을 따라서 산간주택가도 쭉 이어지는데 이 중에서 바다를 보는 동네에는 다른 지역에서도 유명한 해안 주택가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가보면 폐가나 달동네도 제법 있는 편이다. 서구에서 제일 평평한 동네는 부민동과 동대신동, 서대신동 부근으로, 과거에 일본인들이 꽤나 거주하던 지역이라서 그런지 척보기에도 꽤나 평수가 커보이는 주택이 많다. 그러나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가 조성되면서 주택들이 철거되고 원룸 건물들이 상당히 늘어나는 중으로 현대식 건축물과 적산가옥 같은 근현대식 주택이 섞인 특이한 풍경을 보인다. 같은 대신동이라해도 서대신동쪽 고운대로 일대(특히 재개발 한창인 서대시장 맞은편 약간 위의 예전 모습) 및 그 위에 있는 해돋이로 일대는 아미동 까치고개쪽 동네를 서대산동에다 그대로 갖다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다. 동대신동에도 마찬가지다.
부산대, 동아대병원+동아대학교+시가지로의 접근성을 갖춘 덕에 신축건물이 아니더라도 방세는 상당히 높은 편으로, 최근에는 동일본대지진 때문인지 일본 사람들도 이곳에 집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다른 시가지에서 주택가만 떨어져나와 독립시켜놓은 동네로, 외부인들에게는 송도해수욕장이나 케이블카 외엔 따로 구경거리가 없지만 주택가가 밀집해서 그런지 인구밀도는 높은 편이다. 이렇게 적당한 시가지에 이격한 입지에 적절한 대학병원이 3개나 있다. 그 밖에도 삼육부산병원을 비롯하여 부산에서 가장 큰 병원이 여러개 있다. 부산시청이 이전하기 전까지 원도심 버프를 받아 6.25전쟁 이후부터 여러가지로 생활 기본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발달한 지역이기 때문에 그렇다. 대학병원뿐 아니라 중형급 종합병원도 있다보니 병원이나 의료시설 하나만큼은 가히 전국구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택가를 접한 동네라서 학교도 엄청나게 많다. 특히 서대신동과 동대신동 일대에 모두 인접해있어서 항상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또한 학교도 많다보니 구덕로 연선에는 크고작은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서구 시내를 걷다보면 초중고 학생들이나 노인들을 항상 볼 수 있지만, 대학생과 청년층 인구는 다른 지역의 대학이나 도심에 전부 빼앗겨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항만도시로서의 부산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전국 최대의 수산물 위탁판매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이 서구의 남부민동에 있다. 2008년 개장한 수산물 유통시장으로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이 송도 외곽에 위치한다. 그러나 구의 재정자립도나 주민들 소득이나 삶의 질 등 각종 경제지표는 부산에서도 낮은 축에 속한다. 젊은층의 취업/학업을 이유로하는 인구 유출이 상당하고, 고령화도 대도시 최고 수준에 달해 시골에서만 볼 수 잇는 초고령사회에 이미 진입했다. 특히 아미동~초장동~남부민동 등 주택가가 밀집한 곳의 낙후도는 부산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오래된 주택은 대부분 산동네에 모여있다. 경사진 계단과 산복도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6-1. 대신동
보통 대신동으로 불리는 곳이다. 동대신동과 서대신동을 합친 의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대신동과 서대신동을 구분해서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미동, 초장동, 남부민동과 더불어 서구에서 대표적인 주거지역 중 하나이다. 2동은 보수산 자락에 단독주택이 몰린 달동네 이미지가 있으며, 부산터널 아래쪽에 있어 중구 영주동이나 동구 부산역 방면으로 바로 갈 수 있다.
부산 원도심이 개발이 안되고 노후화가 지속되면서 서구에 속한 대신동 역시 낡은 동네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일제강점기 전부터 일본인이 많이 거주해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를 비롯해 전력, 전차, 운동장 등의 시설물과 좋은 학군 덕에 일찍이 부촌으로 자리잡았으며 그 명성이 수십년간 이어져 과거 7~80년대에는 부산에서 손꼽히는 부촌이 되었다. 현재 부산의 부촌이 동부산권으로 급속히 이동함에 따라 사실상 달동네(산복도로)와 달동네를 재개발한 아파트들만 남은 형편이 되었으나 여전히 동아대학교병원인근이나 서대신동 빌라촌에는 여전히 고급주택들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세워진 부산형무소부지에 자리잡은 동대신동 삼익아파트는 80년대 당시 남천 삼익비치, 동래럭키 등과 함께 부산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였으나 지금은 낡아서 안전진단 E등급을 받아 재건축이 확정되었다.
서대신동의 주거지역으로는 구덕운동장(구덕야구장)이 유명하며, 서대신동과 사상구를 잇는 산간 오지에 꽃마을이라는 명칭의 자연마을이 널리 알려져있다.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터를 잡아 주민다수가 화훼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것이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어 인근 구민과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6-2. 부민동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피난오면서 이 곳이 임시수도 정부청사를 포함하여 각종 정부 기관들이 대거 몰려있었던 역사와 전통이 깊은 장소이다. 이 동네가 부민동이라 불리게 되었던 이유는 옛날에 부산의 진짜 부자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부산에 많이 살았는데 일본인 부자들은 주로 부산항 주변의 서구, 동구, 중구에 많이 살았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부민동으로 불렸던 것이다. 지금도 이 일대에는 적산가옥이라 불리는 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일본인들이 살았던 집을 적산가옥이라 부른다.) 특히 옆 동네인 아미동 비석마을 근처에 가보면 적산가옥이 태반이다.
서구의 중심에 위치해있어서 타 지역에서 서구 부민동을 경유하여 지나가는 시내버스 노선도 상당히 많아서 충무동, 암남동, 동대신동, 서대신동과 더불어 교통이 가장 편리한 지역 중 한 곳이다. 1호선도 있다보니 동래와 온천장, 부대앞을 제외하면 부산 웬만한 번화가는 환승없이 한번에 바로 갈 수 있다. 동대신동과 서대신동과 마찬가지로 서구에서 몇 없는 평지지역이다. 부민동의 유일무이한 아파트단지로는 E편한세상부민이 있고 그 외에는 소규모빌라형아파트들만 있다.
6-3. 아미동
옛날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공동묘지였던 곳에 점점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이 마을이 바로 비석문화마을이다. 사하구 감천동에 위치한 감천문화마을과 매우 가까이 인접해있으며, 실제로 일제강점기 시절 옛 일본인들이 만든 비석 위에다가 터를 잡고 움집을 지어서 생활한 것에 유래가 있다. 군데군데 당시 묘비를 주출돌이나 계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구의 달동네로 까치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달동네 사하구 감천동으로 갈 수 있다.
6-4. 초장동
남부민동과 함께 서구의 대표적인 산동네 지역으로서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되어있다. 산복도로 위주로 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모습이다.
6-5. 충정동
서구청이 소재하고 있어 서구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한다. 동쪽에 바로 자갈치랑 남포동이 있어서 유동인구는 그럭저럭 되는 편이다. 전통시장이 밀집해있어 상권도 어느정도 형성돼있다. 부산 남항과 인접한다. 서구청 맞은 편에 남포동 BIFF광장 입구가 있어서 번화가의 길목이다. 서구의 중심지다.
한때는 아시아 최대규모의 집장촌이었다. 일명 완월동이라 불리는 부산광역시의 대표적인 사창가로 유명한데, 무려 일제강점기시절부터 시작되어온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창가 지역으로 해방 이후 동네 이름 자체가 부산지역 집장촌의 대명사격으로 사용되면서 동네 인식이 나빠지자 1961년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해 매춘을 금지하여 사창화되었다. 이후 1991년7월1일에 미성년자 보호법이 발효되어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Red Zone)'이 설정되어 청소년들의 통행이 24시간 금지되는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CCTV도 많이 설치하여 사창가에서 대낮에 불법영업을 하는 것을 단속하였다.
다음 로드뷰로 큰길을 봐도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을 정도로 야간시간대에는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남아계열이나 백인외국인들이 여럿 보이는데 특히 러시아인들이 많으며 부산역 건너편의 텍사스 거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7. 영도구
7-1. 역사
1957년 구제실시로 영도지역을 관할하는 영도구를 설치하였다. 동해안과 남해안을 아우러 이르는 섬이기도 하며 면적은 여의도의 3~5배다. 도심상권인 남포동과 가깝게 위치하고 있지만 부산 육지사람들에게는 묘하게 외곽으로 분리된 느낌을 주는 동네다. 섬인데다가 부산 16개 구/군 중에서 유일하게 지하철 노선도 없고 태종대 같은 바닷가 갈 일이 아니면 좀처럼 접할 수 있는게 없는 동네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섬 단위의 행정구역들 중에서 유일하게 구 단위의 도시이기도 하다.
신라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절영도라고 불렀다. 이유는 이곳에서 자란 말은 워낙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끊어져 보여서 절영도라고 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영도가 지금처럼 시가지로 꽉 차있지 않았고 초지가 넓었으며 말 키우는데 방해되는 맹수도 없고 서라벌에서 가깝기 때문에 말을 키우기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부산항 일대가 개발되면서 점점 도시화되었고 1934년 영도대교의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지자 부산 시가지의 일부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절 자가 빠지도 영도로 바뀌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근대적인 조선소가 생긴 곳이 영도다. 일제시대때 미쓰비시사가 1937년7월10일 부산 영도에 조선중공업주식회사(현 한진중공업)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조선업을 시작했다. 한국 전쟁 당시 최후방어선 지역이었기에 피난민들이 영도로 대거 몰렸고, 이때문에 50~60년대 생 유명인들의 출생지나 성장지가 이곳 영도인 경우가 꽤 많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부산광역시는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자치구 중에 유일하게 오직 섬으로만 구성되어있으며 지역이 구명과 동일한 영도와 그 부속도서인 해양대 그 자체조도와 무인도인 생도를 포함한다. 여름철이면 섬에 구름이 잔뜩 끼는 일이 잦다. 이는 영도의 지형적 요인 때문으로 일명 영도 구름모자라고 한다.
7-2. 생활환경
영도대교를 통해 일찌감치 육지와 연결되었고, 일제강점기 부산부로서 개발이 된 동네다. 영도대교말고도 부산대교, 남항대교, 부산항대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영도 내 시내버스 노선 특성상 남포동과 송도로 나가는 노선이 집중되어 있는 반면 북부산과 동부산으로 가는 노선은 빈약한 편이다.
부산이 원래 산이 많고 경사도 심하지만 영도는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온 동네가 고저차가 빡세다. 거기다 섬이 좁은데 사람은 많아서 길이 매우 좁다. 이런 고저차로 인해서 아이들이 자전거나 스케이드보드로 동네를 다니기가 매우 빡세다. 특히 초심자는 주의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악하고 빡센 고저차 지역에 운전연습학원이 무려 2개나 존재한다. 게다가 웬만한 도로가 전부 연결되어 있어서 초보자는 길을 잃기 쉽다.
영도구는 중구, 서구, 동구와 함께 부산의 구도심으로 분류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들 지역에서는 존재감이 가장 희박하다. 태종대는 알아도 그곳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남포동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그런지 전통적으로 상권이 상당히 미약하다. 중구로 대표되는 구도심의 상권의 주 고객층이 영도구 주민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1011번 개통 이후 센텀시티와 해운대역 일대를 보조 상권으로 두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소재 주요 기업으로는 한진중공업 본사가 있다. 다만 한진중공업 말고도 그 옆에 영세 조선소가 들어서 있어서 청학대 일대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영도의 경제가 거의 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부산광역시에서 타지 출신 사람들이 정착했던 비율이 높은 지역에 속하는데, 특히 제주도 출신 사람들이 영도구에 많이 거주한다. 대부분 제주 4.3사건이 터지면서 뭍으로 피난을 떠나 영도에 정착한 케이스다. 그래서 제주도의 신구간 풍습과 관련 있는 풍습들이 있다. 6.25전쟁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하기도 햇는데, 이 때문에 주거환경이나 도로구조가 난잡해진 부분도 있다. 정상적인 도시발전 과정을 거쳤다면 현재 해운대와 비슷한 분위기가 되었거나 아예 멕시코 칸쿤의 호텔 구역처럼 분리되어 부산 도심이나 동래 지역과는 다른 분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7-2-1. 남항동
부산대교가 개통된 이후에도 한동안 영도구의 관문 역할을 했던 동네로, 관할구역 대부분이 평지나 바닷가를 중심으로 소규모 영세 조선소가 몰려있는 탓에 전반적으로 너저분하고 낙후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그래도 시내버스의 절반이 이곳을 지나가는데다 다리 건너서 바로 남포동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교통 하나는 무지하게 편리하다. 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이 남항동에서 나고 자랐다. 실질적인 고향인 셈이다.
7-2-2. 동삼동
동삼1동은 동삼동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영도구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동네다. 동삼동의 아파트단지 대부분이 이곳에 몰려있다. 고저차도 엄청나지만 급경사가 많기 때문에 걸어가기에는 상당히 빡센 동네지만 주거환경은 의외로 괜찮은 편이다.
동산2동은 관광지로 유명한 태종대와 하리선착장, 그리고 한국해양대학교로 설명이 끝나는 동네다. 동삼3동은 원래 동삼1동의 일부였지만 동삼주공아파트가 있는 부분만 따로 떼서 만들어진 동네다. 임대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이라 소외 계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로 사정으로 주공아파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거의 급경사 지역인데 소외 계층의 거동이 많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기초수급자 및 저소득계층이 영도구 내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이다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업무강도는 높은 편이다.
7-2-3. 봉래동
봉래1동은 부산대교의 진입로가 이곳에 있어서 사실상 영도의 관문 역할을 한다. 남항동과 마찬가지로 바닷가 쪽은 영세조선소와 창고, 부두가 몰려있기 때문에 음산한 분위기를 내지만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번화한 동네로 해동병원이 이 곳의 랜드마크가 된 상태다.
봉래2동에 한진중공업이 걸쳐있으며 그 외에는 신선동과 마찬가지로 낡은 주택들이 몰려있어서 전반적으로는 낙후된 달동네 풍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신선동과는 달리 바닷가를 끼고 있기 때문에 고저차가 엄청난 곳이다. 다만 고지대의 경우에는 부산항 신선대부두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망은 꽤 좋은 편이다.
7-2-4. 신선동
봉래산 기슭에 자리잡은 동네가 다 그렇듯이 낡은 주택이 광범위하게 널려있으며, 당연하게도 상업시설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달동네하고 비슷한 곳이다. 현재 이곳에 뉴타운홍보센터가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불경기크리로 인해 당분간은 재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을 듯 하다. 영도구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해있지 않은 동네다.
7-2-5. 영선동
영선1동은 영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영도구의 상업시설이 대부분 여기에 몰려있다. 남항동과 마찬가지로 관할구역 전체가 평지이기도 하지만 남항동에서 볼 수 있는 조선소가 없기 때문에 주거환경치고는 그나마 괜찮은 동네로 남항시장이 이곳에 있다.
영선2동은 북쪽과 남쪽의 고저차가 엄청난 것이 특징이며, 보통 이송도라고 하면 여기를 가리킨다. 절영해안산책로의 진입로가 여기에 있으며, 특히 진입로 윗부분의 깎아지른 절벽에 주택이 몰려있는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주거환경이 결단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송도와 남해바다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전망 하나는 더없이 좋은 동네다.
7-2-6. 청학동
한진중공업이 이 곳에 걸쳐있다. 그 외에는 신선동, 봉래동과 같이 낡은 주택들이 몰려있어서 전반적으로는 낙후된 달동네 풍경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이런 모습과 아주 상반된 풍경을 나타내는 신도브래뉴(2009년7월완공)이라는 아파트가 오지마을 바로 옆에 세워졌는데 처음엔 고급스러워보이는 풍경이나 시설로 집값이 고공행진을 하는듯 하였다.
청학2동은 낡은 주택들이 몰려있는 걸로 치면 두말하면 입아프다. 아파트가 꽤 있기는 하지만 동삼동보다는 못하다. 버스가 꽤 많이 다니는 길목이기도 하다. 동삼동과 영선동과 더불어 영도에서 급행버스가 다니는 몇 안되는 동네 중하나다. 영도구청이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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