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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입지분석

부산광역시 동래 (금래구/동래구/연제구)

by 다올혜윰 202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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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부산광역시 동래

지금 부산광역시의 옛 이름으로 동래의 중심지역은 지금의 동래구 일대였다. 현재는 동래구라는 뜻 이외에도 넓은 의미의 동래권 지역인 동래구, 연제구, 금정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인다. 이 중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동래는 지금의 동래구 영역이며 금정구와 수연구, 연제구는 동래의 변두리에 해당했으며, 요즘에도 연제구와 금정구는 동래권 지역으로 보지만 수영구는 남구나 해운대구와 함께 동부산권 지역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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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지 종합복원 조감도

서울의 사대문처럼 과거 동래부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서남북 4개의 문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동래읍성은 일본과의 외교창구였기 때문에 관아의 규모도 크고 격식이 높았다. 조선시대에는 초량에 왜관이 설치되어 일본과의 무역 거점 도시 기능을 하였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조선통신사를 보낸것처럼 역으로 일본에서도 조선으로 사신단을 보냈었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 수도 한양까지는 가지 않았고 보산 동래부까지만 왔다갔다했다. 임진왜란의 기억으로 조선은 에도 막부 정권을 완전히 믿지 못하여 일본 사신단이 한양으로 가는 길을 익혀둘까봐 그랬다고 한다. 때문에 조선 정부는 일본사신에게 얕잡히지 않기 위해 동래의 격을 도호부로 높여 중요시했다. 한편 훗날 도시의 이름이 되는 부산(부산포, 부산진)이라는 이름은 이 당시 동래도호부 예하의 포구 및 진에 불과했었다.

 

 

1895년 23부제 시행

1895년 23부제를 시행했을 때는 포항시, 경주시, 울산광역시, 양산시 등 경상도 동쪽을 떼어서 동래부라고 명명했었다. (위 지도의 남서쪽 아래쪽의 연두색 부분) 이 안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동래엿기 때문에 동래부라고 명하게 되었다. 이듬해 13도제 시행으로 동래부는 반반 나눠서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일부가 되었고, 동래군은 동래부가 되었다. 

 

 

1896년
1914년
1945년 광복 직후

일제강점기와 8.15 광복 이후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동래군은 부산시에 편입 및 흡수되었다. 1973년 최종적으로 폐지되고 양산군에 병함됨으로써 동래군은 소멸되었다. 이후 동래군의 영역은 울주군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면서 기장군으로 부활하게 된다. 한편 1957년 부산시에 구제가 실시되면서 동래구가 설치되었는데, 폐지된 동래군을 대신하여 동래구가 부산의 옛 이름은 '동래'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위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원래는 동래가 상위 지명, 부산이 하위 지명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산과 동래의 지명의 지위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동래광역시 부산구가 되었을 것이다. 부산과 통합된 이후에도 1970~1980년대까지는 부산과는 다른 동래 지역만의 정체성이 남아있었지만, 동래와 부산 시가지 사이의 미개발 지역까지 부산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연담화되어 지금은 완전히 부산이라는 도시의 일부로 동화된 상태다.

 

 

2. 동래구

2-1. 역사

부산광역시의 중북부 내지 동북부에 위치한 자치구로, 북쪽 금정구 - 남쪽 연제구 - 서쪽 북구, 부산진구 - 동쪽 해운대구에 접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산 도심이었던 지금의 중구 일대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동래온천에서 출발해 서면을 지나 부산 시내를 잇는 부산전차의 종착역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몇 개의 극장이 있었는데, 90년대 무렵 마지막 남은 극장까지 모두 닫았다. 하지만 30대 이상은 아직도 이곳을 극장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근현대 이전 부산의 역사 대부분은 동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래라는 지명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기장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오래 된 지명이다. 신라~고려 때 동래군의 중심지는 원래 지금의 수영구쯤에 위치하고 있엇으나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하여 고려 시대에 지금의 동래구로 위치를 옮겼다.

조선시대에 들어 외국과의 창구로서 발전하고 동래 관할인 부산 포구의 중요성이 늘어나면서 동래부로 승격되었으며, 동래부의 영역은 오늘날의 강서구, 기장군, 북구 대부분의 지역을 제외한 부산광역시 전역에 해당된다. 부산은 원래 동래의 하위 지명이었다. (동래구 부산진, 동래부 부산포 등)

동래구는 현재의 금정구 남부. 수영구, 해운대구, 연제구를 포괄하는 꽤 넓은 구였다. 그러나 1980년 수영강 동부 지역이 해운대구, 1988년 복부 2/3가량이 금정구로 분구하고, 1995년 남아있던 면적 중 남부의 절반 가량이 연제구로 분구하면서 면적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금정산 자락이 내려오는 극서부를 제외하고는 부산광역시 치고 평평한 편이고, 온천천이 구의 북쪽에서 내려와서 동쪽으로 흘러나간다. 구가 전체적으로 오래된 거주지이다보니 전체적으로 오래된 느낌이 나는 듯 하다. (고려시대~조선시대까지 부산의 중심지였으니 당연하다.) 

유명한 동래온천이 있어서,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 때문에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이 자주 찾았고, 일제시기에 이 지역을 근처로 일본인 중심의 온천촌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온천장이라고 했다. 그 덕분에 아직도 동래 온천 일대는 봄만 되면 벚꽃이 만개한다. 원래 조선사람들은 주로 동래 시장 근처에 모여 살았으므로, 일제시기 두 지역 주민들 간에 알력도 있었다.

 

2-2. 생활환경

관할구역은 명륜동, 온천동, 사직동, 안락동, 명장동, 수안동, 칠산동 및 낙민동이며, 총 13개의 동으로 이루어져있다.

전반적으로 오래된 주거지역으로 상업지역이 연제구로 분리되었고, 공업지역이나 새로 개발된 지역이 금정구로 모두 분리된 상황이다. 사직동~온천동 구역이 그나마 번화가라고 할 만한 정도이다. 전통적으로 오래된 주거단지이다보니 단독주택이 비율이 높은 편이었으나 재개발로 인해 점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는 추세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부산의 대표 상권 중 하나인 부산대상권이 빠르게 무너지면서 반대로 동래역 주변 상권이 빠르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동래구는 40~50대 부부 + 학생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이 많은 편이며, 비교적 조용하고 치안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주거에 적합하며 학교도 많다.

중산층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민들 대부분이 평범한 가정이라 타지역에 비해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비슷하다. (동부산권인 해운대구, 남구 등은 동별로 생활수준 격차가 많이 나는 편) 그러다보니 동별로 생활수준 격차가 거의 없어서 주민간 위화감도 적은 편이다.

 

2-2-1. 명륜동
2009년까지만해도 주택들이 많은 조용한 동네였으나 2010년 초중반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지금은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동래구에서 가장 부촌인 동이다. 명륜동이 동래구의 중심지나 다름없다. 아파트 단지들(명륜아이파크1차/2차, 명륜쌍용예가, 명륜sk뷰, 센트럴파크하이츠, 힐스테이트, 명륜자이 등)과 명륜1번가를 주축으로 메가마트와 대동병원 주변에 동래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술먹기 좋은 곳,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가 있다. 

 

2-2-2. 온천동
동래온천 및 금강공원을 비롯해 동래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여러 유형 및 무형 문화재들이 있어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며, 숙박업 및 요식업들이 발전되어 있다. 온천동은 문화, 교통 및 지리적으로도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허심청은 오래 된 온천 목욕탕이지만 부산에서 가장 큰 목욕탕이므로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외 녹천탕, 가족 목욕탕 등 목욕탕 천국 동네다.

과거 온천동의 동래 럭키아파트는 부유층이 많이 사는 아파트였는데, 지금도 역시 부산에서 중산층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금강로26번길 일대 주변에는 대형 단독주택들이 꽤나 있으며 아파트 단지들(SK허브스카이, 벽산 아스타, 동래효성해링턴플레이스, 반도보라스카이뷰, 동래SK뷰, 동래럭키, 동래대우아파트, 명륜자이아파트 등)도 많은 편이다.

2-2-3. 사직동
사직동의 가장 큰 특징은 사직야구장. 저녁 시간에 야구를 보고 근처의 술집을 가는게 거의 필수 코스다. 이 곳 역시 아파트가 많은 편이다. 

2-2-4. 수안동, 낙민동
수안동은 동래구의 중앙에 위치한다. 조선 시대 동래 읍치의 동헌이 있던 곳으로, 서쪽과 남쪽은 온천천이 있다. 수안동의 가장 큰 특징은 동래 부동헌과 동래 경찰서, 동래구청 등 주요 행정기관들이 밀집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래 시장도 위치하고 있다. 특히 동래 시장과 수안 인정시장은 같이 붙어있어서 노인층에게 인기가 많은 곳 중 하나다. 노인층을 위한 술집과 콜라텍이 많이 밀집되어 있다. 수안동과 낙민동의 주민 인구수가 많지 않아서 두 곳 모두 합쳐 수민동 주민센터에서 같이 관리한다. 낙민동은 작은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공장들이 제법 있으며, 온천천 공원이 있어 가볍게 운동하기에도 좋은 동네다.

2-2-5. 안락동
동래구와 해운대구의 경계선상에 있는 법정동이다. 롯데캐슬 애브뉴, 안락경동라인, 안락SK아파트, 안락뜨란채1차/2차, 안락현대, 안락SK쁘띠메종, 센텀더블루하이츠 등의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위치해 있다. 동해선이 개통되면서 안락역 덕분에 해운대구 좌동과 기장 일대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의료기관(부산항운병원, 부산봉생병원, 미래병원)이 밀집되어 있으며, 안락로 132 하하빌딩을 주축으로 상권 및 요식업들이 발달되어 있다. 2020년 부산원동역이 개통됨으로써 교통이 한결 편리해졌다.

2-2-6. 명장동
금정구 서동, 해운대구 반송동, 기장군을 갈 때 거쳐가는 곳이다. 아파트 재개발을 많이 진행하지 않아 옆동네인 안락동과 많이 비교되는 곳이다. 대부분 70~9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과 아파트가 많다. 명장동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명장역(4호선) 지하철이 지나가며 주변에 학교가 많다. 학교수는 매우 많지만 그에 비해 아이들 수는 매우 적다. 1990년대~200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인구가 많을 때에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많았으나 점점 인구 감소로 인해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 되어버렸다. 명동초의 경우 한반에 10명조차 안되는 인원이 입학하면서 부산 페교 위기의 학교로 거론되었다. 명장동의 심각한 문제는 워낙 노인층이 많다보니 돈 소비률이 낮아서 가게가 얼마 못 버티고 망하는 경우가 많다. 명장시장에도 노인들만 이용할 뿐 젊은 층은 안락동으로 가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소비를 한다. 최근 금정고 근처 E편한세상 대림아파트 재개발을 시작으로 충렬중학교 근처 재개발이 시작될 희망을 보이고 있다.

2-2-7. 복천동과 칠산동
재개발지역으로 꼽혔었으나 땅 속에 유물드이 많이 묻혀있어 재개발이 되지 못한채로 옛날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가야문화가 발생한 지역임을 알려주는 복천동고분군과 박물관 등이 있다. 대부분 오래된 주택과 빌라만 있으며, 주로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칠산동 역시 복산동과 비슷하며, 매우 작은 동네라서 칠산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2-3. 교육

1989년 설립된 동래고와 동래중과 같이 역사가 오래된 학교들도 있으며, 동래고 외에도 일대에 걸출한 고등학교가 많아서 부산의 전통적인 8학군에 속한다. 학군 자체는 남구, 해운대구와 함께 부산 내에서 최상위급이라 할 수 있다. (2014학년도 기준 부산지역 일반고 수능성적 TOP20개학교 중 동래구 소재 고교가 7개를 차지하여 가장 많기도 했다.)

최고 전성기때인 1980~1990년대에는 지방 최고의 학군으로 통하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와도 비교되거나 뛰어넘었을 정도의 위용을 자랑했었다. 1980년대 부산 3대 부자 중 2명의 자제가 동래구 학군 고등학교에 재학했었을 정도로 1980년대 당시 부산지역 실세들의 자제들이 동래구 학군에 많이 있었다.

심지어 1987년 1988년에는 학력고사 전체 수석을 2년 연속이나 동래구 고등학교에서 배출되어서 전국적으로 지명도를 얻었으며 이때 분양된 복천동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는 동래학군이 가장 과열되었던 시기에 분양되다보니 전국에서 투기꾼들이 몰려들어서 이슈가 되었을 정도다. (당시 대구 수성구의 우방 궁전맨션 아파트와 라이벌 플래그)

현재는 대학교가 없는데, 이는 금정구와 연제구가 차례차례 분구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부산대학교(금정구)와 부산교육대학교(연제구)가 떨어져나갔다.

 

 

3. 연제구

3-1. 역사

부산광역시의 중부에 위치한 자치구로, 연산동의 연 + 거제동의 제자를 따서 연제구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동쪽으로는 해운대구, 서쪽으로는 부산진구, 남쪽으로는 수영구와 남구, 북쪽으로는 동래구와 접하는 부산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다.

여러 관공서와 법조타운 (부산시청, 부산지방경찰청, 부산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부산지방검찰청, 부산고등검찰청, 부산지방국세청,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산지방우정청 등)이 밀집한 부산의 행정 중심지다. 금련산과 황령산의 일부가 구의 남부에 포함되는데, 이 지역과 연산동과 망미동의 경계 역할을 하는 배산을 제외하면 대체로 부산광역시 치고는 평평한 편이다. 온천천이 구의 북서부를 퉁과하며 동래구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동래구 남쪽의 크게 개발되지 않은 근교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부산 시가지가 북쪽 내륙으로 차츰 확장하면서 동래와 서면 사이의 이 지역을 원도심을 대체할 광역행정 중심지로 개발하기로 결정하였고, 이후 시청을 비롯한 주요 행정시설이 1990년대 초반부터 이전하였으며 1995년에 연산동과 거제동을 분구하여 신설하였다.

법정동이 단 2개뿐이라 전국의 구 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법정동으로 이루어진 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중 하나인 연산동이 9동까지 있을 정도로 부산의 단일 법종동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대형 동이다. 연제구의 인구 수는 20만이 넘는 수치로, 부산의 서구 중구 동구 영도구 강서구 기장군보다도 인구가 많다. 수영구보다는 약간 많다.

 

3-2. 생활환경

부산 지역에서 의료 인프라가 좋기도 손꼽히는 곳으로, 공공기관도 밀집해있고 고소득자가 많아서 다양한 진료과들의 병원이 들어서있다. 특히 연산역 주변에 밀집해 있으며, 부산시에서 운영하는 부산의료원이 거제동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과거에는 연산교차로가 유흥의 메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었찌만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연산교차로의 유흥업소들은 하나둘 정리되었고 지금은 일대가 의료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시청소재지인 만큼 시청에서도 연산동 일대의 주거환경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 하다.

 

3-2-1. 거제동

부산시 연제구 북서부에 위치한 법정동으로 법조타운이 위치하고 있다. (부산지방검찰청, 부산고등검찰청, 부산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법원, 검찰청 및 법조타운에서 근무하는 법조인들과 공무원들이 바로 뒤편에 위치한 현대홈타운이나 거제월드메르디앙, 거제센트럴자이, 롯데캐슬피렌체, 월드마크아시아드 같은 인근 아파트에 많이 거주하는 편이다.

거제1동의 경우 다른 거제동의 행정동과는 달리 유일하게 온천천과 맞닿아 있고, 거제동 관내에서 유일하게 동래구의 마을버스가 다니는 동네이며, 온천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동래점에 주로 장을 보러 다니며, 연제구청보다 동래구청이 가깝기도 하는 등 전반적으로 동래구 생활권이다. (1995년 분구 이전에 실제로 연제구가 동래구였던 영향도 있을 듯)

거제2동의 경우 주거지역은 롯데캐슬 피렌체, 월드마크 아시아드 등 고급 아파트들이 있으며, 부산의료원 옆으로는 대규모 재개발 지역인 거제2구역주택재개발 현장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라 현재 총 4,470세대의 중소형 평수 위주로 구성된 아파트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2024년에 '레이카운티'로 입주할 예정이다. 인접한 동래구 사직동과 함께 통상 '사직'으로 부르는 곳에 이 동 지역도 포함된다.

거제동 레이카운티

거제3동의 경우 거제대로를 경계로 하는 거제4동보다 거제천로를 기준으로 갈라지는 연산5동과 더 같은 동네 인식이 있다. 거제시장이 거제천을 중심으로 연산5동과 거제3동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연제구 내에서 먹거리 상권이 가장 발달한 동네이기도 하다.

거제4동의 경우 흔히 거제리라 부르는 동네로 동해선 거제해맞이역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계성여자상업고와 거성중 주변에 거제4동 주거지역과 함께 대규모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3-2-2. 연산동

비수도권 내에서는 단일 법종동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동이다. 인구로 중구를 능가하는 유이한 행정동이다. 연산교차로 일대에 부산 최대 크기의 유흥가가 조성되어 있어 부산에서 유흥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지역이다.

연산2동은 연산5동과 함께 부산광역시 행정의 중심지 노릇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부산여대와 부일여중이 있었으나 지금은 교명을 신라대학교, 신라중학교로 바꾸고 사상구로 이전하면서 현재에는 없다. 부산시청 맞은편도 연산2동인데, 부산시청 맞은편이라는 상당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도시 개발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60~70년대에 만들어진 노후 주택들이 많아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부산시 소유의 금싸라기땅이 오랫동안 공터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현재 신림삼거리에 위치해있는 물만골역의 연원이 된 '물만골'은 대한민국 제2도시 시청을 코앞에 두고 극악의 낙후지역 포스를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2015년 들어서서 시청 맞은편의 노후 주택들 재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으며, 부산시 소유의 금싸라기 공터도 2015년 하반기에 행복주택 부지로 확정이 되고 공사가 시작되면서 수년 내로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연제구 연산2동

연산4동의 경우 과거 브니엘고등학교와 브니엘중학교가 서울대 및 의대 진학률에서 지방 순위권에 들면서 교육열이나 학군면에서는 대구 수성구의 황금동과 범어동에 비벼댈만한 연산동의 최고 전성기였다. 그러나 1996년 브니엘고등학교는 금정구로 이전하고 브니엘중학교는 폐교되면서 이후 반도보라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로 인하여 연산동이 학군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대구 수성구과의 격차는 넘사벽으로 벌어져버렸다. 1990년대까지만해도 학군 수준이 상당히 높았으나 동네 자체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서 대단지아파트가 없었고 오래되고 상태가 좋지 않은 주택만 많다보니 부유층들의 선호도는 없었다. 조용했던 연산4동에 브니엘학원 이전 이후 학군 수요가 증발해버린데다가 교육환경보호구역이 해지되면서 조용한 주거지에서 연산동 유흥의 중심지로 전락해버렸다. 그나마도 지금은 연산5동 북단 상권에 많이 밀렸다.

연산5동의 경우 부산시청과 부산의회, 경찰청이 위치해있는 곳으로 블럭단위로 이루어진 단독주택지였다. 그러나 교통의 편의성으로 원룸촌으로 바뀌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주차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원룸촌의 특성상 뜨내기들이 많아서 주거환경이 안 좋아지고 있다. 연산교차로쪽 지역은 서면 다음으로 금융업과 의료업이 많은 지역으로 큰 빌딩들이 많다. 연산교차로를 양분하고 있는 4동+5동 최북단 일부 쪽은 유흥업소가 매우 발달되어 있는데, 5동 중심지와 거의 바로 면해 있어 온도차가 확 느껴진다. 연산5동은 몇 안되는 평지지역으로 과거 동래와는 다르게 저지대에 속해서 과거 늪지대가 있던 곳이었다. 연산의 연이 연꽃인데 이 지역에 연꽃이 많이 피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블록화가 잘 되어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곳은 일본인들의 거주지역이었으며 2005년까지도 그시절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이후 단독주택주거지로서 매우 조용한 동네였으나 10년전 2005년경부터 단독주택을 부수고 원룸이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다만 무분별한 개발로 인하여 단독주택지였을 때는 문제가 없던 것들 (좁은 도로폭, 녹지의 부족, 주차장 부족 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연산교차로의 유흥가로 인해 원룸거주 인구 중 유흥업 종사자들이 많이 살고 있기도 해서 근래 들어서는 주거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교통은 부산에서 가장 좋은 곳에 속하는 곳으로 동서남북으로 30분 안에 모든 도심지를 갈 수 있다. 대중교통도 매우 좋아서 거제역, 연산역, 교대역, 시청역 등이 위치하고 있어서 어디서든 지하철역을 10분 안에 만날 수 있다. 버스도 연산교차로와 거제대로를 따라서 매우 많다. 학군도 나쁘지 않다. 연제초가 있으며 중고등학교는 관내에 없어도 동래/양정 방면으로 두루 배치될 수 있다. 

연산6동의 경우 2008년3월1일에 연산동을 통합하여 지금의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주거 수준이 썩 좋지 않았었으나 2005년 말에 부산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면서 주거 환경이 어느정도 개선되어가고 있으며, 현재 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연산8동의 경우 토곡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뉴딜사업이 진행 중이다. 연산9동의 경우 연산동쪽보다는 수영, 망미쪽의 느낌이 강하며 연산동과는 이질적이다. 흔히 연산8~9동을 묶어서 토곡이라고 칭하는 지역이다. 

 

3-3. 교육

부산교육대학교가 위치해있고, 특수목적고인 부산외고가 있으며 그 인접 지역에는 부산과학고등학교도 있었다. 이 두 학교는 부산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학교들 중 하나였으나 그 외 다른 고등학교들은 학력 문제가 있다. 그래도 부산 4학군 소속으로 부산에서는 나름 중상위권에 속하는 학군이며, 연제구 거주자들의 상당수가 동래구 고등학교로 배정되는 경우도 많아서 실질적인 교육 문제는 거의 없다.

거제동 법조타운 일대에는 법조인(판사, 검사, 변호사)같은 고소득 전문직이 많은데다가 외고의 존재로 중학교의 교육열이 매우 높고, 부산교대와 다수의 학원이 분포되어 있어서 교육 환경은 매우 좋은 편이다. 연제구 전역이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대거 입주할 예정이라서 앞으로 주거 및 교육 환경은 더 좋아질 듯하다.

 

 

4. 금정구

4-1. 역사

역사적으로 쭉 동래군 북면에 속해 왔던 지역이며 1988년 동래구 북부 2/3정도를 분구시켜서 생성되었다. 구의 명칭은 서쪽에 위치한 금정산에서 따왔다. 

자치구에 비해서 인구가 생각보다 적은 편인데 7번 국도 구간인 중앙대로 주변에만 시가지가 좁고 길게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자치구 서부에는 금정산이 있고 동부에는 골프장과 회동저수지가 있어서 시가지가 많이 좁다. 동래구와 맞닿은 구 남부 장전동과 부곡동에 들어서야 시가지가 조금 넓어진다.

이 곳의 전화번호 앞자리는 동래구와 같이 5로 시작한다. 따라서 이 곳을 동래구랑 같은 권역으로 묶으려는 경향이 강하며, 실제로 동래-금정-연제는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같은 권역이다. 더구나 금정구나 연제구의 경우 비교적 최근에 동래구에서 분구되었으니 당연하다.

 

4-2. 생활환경

4-2-1. 구서동
구서동은 한때 태광산업의 세력이 막강했던 곳으로,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이 1969년에 금정구 최대의 공장인 태광산업 구서동 공장이 들어서면서 태광산업 근로자들도 같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 덕분에 1970년대 이후로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5년에 들어선 구서동 최초의 아파트인 남산아파트도 사실상 태광산업 근로자들을 위한 아파트였으며, 구서E마트 자리도 원래는 태광산업의 보세창고와 사택으로 쓰이던 부지를 임차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구서2동의 금정산 방면 부지(태광여상 주변)도 오래전에 태광산업 이임용 회장이 사립학교 설립을 위해 대량으로 매입했다가 구서동 택지조성 때문에 상당부분 되팔았던 적이 있을 정도로, 구서동 살면서 태광산업 이임용 땅을 안 밟고는 못지나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고한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서동 땅 상당수가 태광산업과 신원개발(이후 삼성그룹에 매각되면서 현재는 삼성물산 건설사업부) 소유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1975년에 태광산업 본사는 서울로 이전하고, 1996년 이임용 회장 작고 이후로는 태광여상 폐교와 구서동 태광산업 공장도 슬슬 철수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현재는 그 세력이 과거에 비하면 많이 약해진 상태다. 그래도 금정구에서 김진재도 손대지 못했던 사학재단까지 섭렵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했던 것이 사실이다. (태광산업은 거물 정치인 이기택과 연관있었던 회사인 금정구 동일고무벨트 김진재 왕조를 능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1980년에는 같은 재단의 부일여중(현 신라중)이 구서동 주공아파트 뒤쪽으로 이전을 하려다가 그린벨트 등의 문제로 인하여 구서동 이전이 무산된 적도 있었다. 그 외 앞서 말한 폐교된 태광여상의 재단이자 강남8학군의 세화고나 세화여고로 유명한 서울의 유명 사학재단인 태광그룹 일주학원도 당초에는 구서2동 일대에 사립대학을 설립하려다가 인가를 받지 못해 무산되면서 1977년에 완전히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버렸던 것. 아직도 구서2동 산4-8지번의 소유자를 조사하면 소유자로 일주학원이 나온다고 한다.


구서1동아파트 단지들과 주택가로 이루어진 주거지 위주의 지역으로, 아파트 단지는 금정산 중턱에 위치한 금강부광아파트와 산 아래쪽에 위치한 구서 쌍용예가, 구서 SK뷰가 있으며, 그 외의 주거지는 빌라나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경부고속도로의 기점이 있으며, 구서역 서쪽으로 구서시장이 위치해있는데 시장으로서의 기능은 약하고 구서역 앞의 소규모 번화가가 있어 기본 생활에 불편이 없는 정도의 상권이 발달해 있다. 금정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도심 공업지대이자 한때 부산 최대규모 섬유공장이었던 태광산업 구서동 공장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1970년대 중반 까지만해도 태광산업의 본사이기도 했으며 태광산업은 과거에 구서동의 상징이었다. (1990년대 이후 공장을 양산으로 이전시키면서 아파트로 재개발 되면서 태광산업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구서2동아파트와 주택가가 많은 주거지역이다. 특히 구서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해서 지은 구서 롯데캐슬 골드는 3,600세대가 넘는 우월한 스케일을 자랑하며 아파트 단지가 많다보니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금정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학생이라면 한번쯤 다녀봤을 대형 종합학원인 하이스트와 서전학원이 있었으나 현재는 문을 닫고 학원건물에 요양병원과 도미노피자가 들어서있으며, 밤에도 빛났던 서전학원의 큰 건물은 2012년 6월에 문을 닫으면서 현재도 텅 비어있다. 한때는 불패신화와 다름없에 여겨지며 구서동을 일면 교육1번지로 불리우게 하던 이 학원들이 허무하게 문을 닫은 것을 보면 인생무상이 느껴질 정도다. 2011년 부산과고가 이전해왔다.

 

4-2-2. 금사회사동
1974년에 공단이 조성되어 관내에 중고자동차 매매단지가 있어서 차량정비소가 많다. 대우버스 동래공장이 이 곳에 있었으며, 몇몇 부산 주민들은 이 금사동 일대를 동상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산의 최초이자 대표적인 공업단지로, 1972년 준공업단지로 지정고시된 이후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1970~1980년대 부산의 경제를 이끌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부산 금사대우아파트는 101동과 106동을 제외한 나머지는 해운대구에 속해있으며 이 문제 때문에 방송이 된 적도 있어 2020년7월1일부터는 101동과 106동도 해운대구 반여동으로 편입되었다.

 

4-2-3. 남산동
실질적으로 남산동의 중심 역학을 하는 중앙대로를 따라서 할인마트, 슈퍼 등이 많이 있다. 남산역 근처에 유흥업소들도 있다. 금정구 전체를 지나는 온천천 산책로의 시작부분이 남산동에 위치해있다. 2015년에는 스타벅스도 들어왔다. 정용화와 쌈디의 모교로 유명한 남산고가 있으며, 2014년에 부산외대가 남산동 신축 캠퍼스로 이전했다.

 

4-2-4. 부곡동
조선시대에는 공수물마을로 불리웠는데, 동래부의 공수물을 조달하는 공수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한제국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양리로 개칭되었는데 양지바른 곳에서 품질 좋은 비단을 생산하여 공물로 보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 지금의 부곡동이 되기는 했지만 지명도 1970년대까지 '금양리'라고 병기된 것으로 봐서는 병행하여 사용되었던 듯 하다.

부곡1동은 단독주택과 빌라가 많으며 집들이 산 아래쪽까지 깊숙하게 분포한다. 도시개발공사에서 만든 늘푸른 아파트와 오래된 재래시장인 부곡시장이 이쪽에 위치하고 있다.

부곡2동부곡3동과 함께 한때는 도심공업지역이었지만 공장들이 모두 이전하고 사라지면서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현재는 LG아파트, 푸르지오, 롯데캐슬, 대우아파트, 우신뉴타운아파트가 있는 주거지역이며, 산을 따라 일렬로 금양중, 사대부고, 부곡중, 대동대, 현곡초가 나란하게 정렬되어 있다. 이 중 사대부고는 부산시내에서 유일한 일반계 국립 고등학교로 부산시내 고등학교 중에서는 상당한 버프를 받고 있다. 지금 대우아파트가 있는 장소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섬유업체인 태창기업과 산업체 부설학교인 태창여상이 있었던 장소인데, 19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창기업과 태창여상은 양산으로 이전해갔고, 우신아파트가 있는 장소는 반도상사가 있던 곳이었으나 반도상사도 그보다 앞서 부곡2동을 떠났다.

부곡3동은 한때 경남섬유, 현대모직 같은 공장이 위치하던 공업지역이었지만 부곡2동처럼 공장들이 모두 이전하면서 아파트로 재개발되어 현재는 주거지역이다. 경남섬유 부지였던 경남한신아파트, 쌍용시멘트 부지였던 상용아파트, 현대모직 부지였던 SK아파트가 있으며 금정구청과 금정구의회가 이곳에 있다.  

부곡4동은 1992년 9월에 부곡1동에서 분동된 지역으로 부곡3동 북쪽이 아닌 부곡1동 남쪽에 있다. 동래구 온천동, 명륜동과 맞닿아있으며 온천장역의 동쪽에 있다. 

 

4-2-5. 서동
1968년 영주동과 충무동에 있던 판자촌에서 온 철거민들이 이주하여 조성되었다. 당시에는 동상동이었기에 현재도 이 지역에서 동상동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주거환경과 주민복지시설이 열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인해 유니세프에서는 주민 복지차원에서 작은 도서관을 지어주기도 했다.

서3동은 주거지역이 대부분인 동네로서 단독주택과 빌라 및 원룸이 많다. 현재 서금사 뉴타운 계획이 추진 중이다.

 

4-2-6. 선두구동
부산광역시 최북단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그린벨트로 지정되어있어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자연 환경이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회동수원지가 일반에 개방되고 주변 그린벨트 규제가 약간 완화되면서 최근들어 부유층들의 전원주택과 별장들이 대거 들어오는 바람에 오륜동과 함께 부산의 숨은 부촌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지역이다. 주거지역의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의 경우는 가격이 꽤나 올랐으며, 특히 회동수원지의 경치를 볼 수 있는 상현마을 일대는 모 재벌 회장의 별장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최근에도 몇몇 회장님들의 별장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또한 회동수원지와 철마면이 이어져있는 상현로는 숨은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있다.

 

4-2-7. 장전동
동의 이름은 긴 화살이라는 뜻으로 주변에서 화살을 만들 때 쓰이던 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정구의 중심 상권이자 부산광역시의 주요 번화가인 부대앞답게 부산대역의 수요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에서 상위 10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많으며, 부산대역에서부터 부산대학교 정문까지 부대앞 번화가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다음 정거장인 장전역도 역세권치고도 수요가 많은 편이다.

장전1동은 대부분이 주거지역이며, 장전2동부산대학교와 학교 앞 상권, 근처 주거지로 구성되며 금정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부대앞이라고 불리는 부산대 앞 상권은 지역 주민들이 심심하면 가는 곳으로 상당히 번화가다. 과거 장전3동이었던 지역은 동래구와 인접해 온천장 상권에 포함되기도 한다. 또한 장전동 금정산 SK뷰와 벽산블루밍 장전 디자인시티가 위치해있으며, 장전3동을 통폐합하면서 래미안장전 또한 장전2동 관할이 되었다.

 

4-2-8. 청룡노포동
과거에는 부산의 최북단이자 개발이 제한된 지역이라서 사람도 별로 없고 존재감도 없던 곳이었다. 여담으로 노태우도 포기한 동네라 노포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다. 그만큼 한때 낙후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다 동래구 온천동에 있던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이 이곳으로 이전해오면서 지금과 같이 활발해졌다. 또한 양산시 웅상지역과 정관신도시 등 인근 신도시 입주민들이 급증하여 베드타운으로써 부산으로의 유동인구가 급격히 많아지고, 울산광역시에서 출발해 이 곳에서 종착하는 버스 노선도 늘어나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별칭이 무색해질 정도로 많이 발전한 상태다. 

 

4-3. 교육

부산에서 교육열이 높은 지역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대형 평수 위주의 대단지 아파트의 비율이 높은 구서동은 부산 사교육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거대한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 부산의 8학군이었음) 

하지만 현재는 지역내 고등학교급 사학재단들의 심각한 사학비리와 그로 인해 교육환경이 열악해졌고, 또 수시 위주로 급변하는 대입 정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나머지 2014년 하반기 이후로 학군이 심각할 정도로 몰락하여 지역내 고등학교의 학생수가 학년당 200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내신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학생들이 또 다시 유출되는 악순환의 반복.

더구나 장전 래미안을 필두로 전세 매물이 갑자기 과잉공급되는 바람에 (학군 전세 수요를 노리고 2014년 상반기까지 아파트들을 한꺼번에 많이 분양했었으나, 2014년 하반기 들어 예상치도 못한 학군 몰락으로 전세수요가 많이 감소함) 래미안 대란으로 불리울 정도로 수십년간 지속되던 금전구 전세 방어 전설이 하루아침에 깨지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도 현재 많이 떨어지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동래구 시절에 설립되어 동래구에서 분구되면서 물려받은 지산고, 동래여고, 부산대사범대부설고와 같이 금정구를 대표하는 걸출한 일반계 고등학교와 부산과고가 있어서 부산에서도 상위권 학군으로 평가받는다. 이 중 부산대사범대부설고는 부산시 유일의 국립 일반계 고등학교로 유명하다. 더군다나 학군을 동래구와 공유하기 때문에 이점이 많다. 그 외에도 부산예술중고가 있고, 부산에서 유명한 사립초인 동래초와 삼육초가 있다. 대학교의 경우에는 동래구에서 분구되면서 물려받은 부산대학교와 부산가톨릭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가 있다. 그 외에도 1990년 당시 구서동에 브니엘대학교가 추가 설립되려 했으나 재단 문제로 무산되었다.

4학군 지역이다보니 1990년대까지만해도 대구 수성구와 맞먹는 실적을 자랑했던 학군을 보여줬으며, 실제로 금정구 분구 초기에는 대구 수성구와 굉장히 비슷한 형태로 학군이 조성되었다. 수성구나 금정구나 둘다 시 외곽이라는 공통점도 있었고, 금정구 북부지역이자 금정구 교육1번지였던 구서동과 남산동의 경우는 택지 개발도 대구 수성구와 같은 시기인 197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졌다는 점도 비슷했다. 또한 대구 수성구처럼 구도심에 있던 유명 사립고들이 여럿 이전해 왔는데, 분구 이전인 1987년에 이전해 온 동래여고와 동래여중을 필두로 지산고, 브니엘고가 이전했다. 그와 동시에 해운대구, 남구 학군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바람에 이로 인하여 2000년대 이후로는 예전만큼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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